인류가 가장 먼저 사용한 금속이 구리고 그 다음이 금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금에 대한 기술이 있는 것만 봐도 인간과 금의 오랜
관계를 알 수 있다.

금에 얽힌 사연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도 인도에 가서 금을 가져오려는 "욕심"의 결과다.

미국의 서부개척이 골드 러시의 산물인 것 또한 분명하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동부로 전해지면서
49년에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서부로 서부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를 연고지로 하는 미식축구팀의 이름 "포티나이너스"도 바로
이때의 모험심 강한 욕심쟁이들에서 따온 것이다.

금에 대한 선호는 두말 할 것도 없이 그 희귀성 때문이다.

귀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물건과도 교환할 수 있고 변질될 우려도 없는
금의 특성에 착안, 이를 화폐로 활용한 것은 그리스인이 처음이라고 한다.

미국 달러화는 1792년 1달러=금1.584g으로 출발했다.

그것이 1934년 금 1트로이온스(31.1035g)에 35달러, 71년말 38달러,
73년2월 42.23달러로 시간이 가면서 금값이 상대적으로 올라가는 양상을
보였다.

68년 금에 대한 이중가격제, 71년 달러화에 대한 금태환 정지, 76년
킹스턴체제에 따른 국제변동환율제채택으로 이어진 국제금융사는 한마디로
금의 움직임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8일 런던금시장에서 금값은 온스당 2백79.15달러로 18년6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장롱속 금모으기운동이 국제금값을 떨어뜨렸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연간 국내 금수요는 1백~1백80t으로 추정이 구구하다.

국내 금거래자체가 그만큼 음성적인 측면이 많기 때문에 정확한 추정이
어렵다는 얘기다.

환율이 크게 올라 지금은 그렇지않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도 국내 금값은
국제가보다 훨씬 높았다.

전통적으로 높은 금선호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금모으기운동이 일과성에 그치지않고 금수요 자체를 줄이는 것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렇게돼 국내금값이 국제가를 밑돌게 되면 금괴밀수 등도 자연적으로
없어지게 될 것 또한 분명하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