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한국 경제를 집어삼킨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신탁통치''의 한파는
해외 한인사회에도 예외없이 찾아들고 있다.

"IMF 굴레"의 한복판에 놓인 대기업 지사 상사와 은행 등 금융기관 주재원
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주재원들의 "호주머니"에 기대온 상당수 교민 자영업자
들도 생업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유학생들은 고환율에 따른 부담을 견디지 못해 학업을 중도 포기한채
귀국행 편도 비행기표를 잡느라 바쁜 모습이다.

본국의 경제사정 만큼이나 황망해진 해외 한인사회의 풍속도를 본지
특파원들의 현지 르포 시리즈로 짚어본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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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을 위한 전시체제 - 미국 ]]]

S그룹 북미본사의 관리담당 임원 C이사와 W차장은 지난주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샌디에이고 등 미국 거점 지역들에 순회 설명회를 다녀왔다.

지난달부터 단행한 대폭적인 보조비 삭감조치와 관련, 북미지역 2백여
임직원들의 동요를 어우르기 위해서였다.

S그룹은 최대 월 8백달러까지 지급했던 배우자 및 자녀 교육비 지원을
거둬들인 것을 비롯, 주재원으로 부임한 뒤 첫 1년동안 연간 5천달러 이내
에서 실비 지급했던 어학교육비도 폐지했다.

주재원들이 정규 수당 외에 과외로 누렸던 월 1천달러 가량의 혜택을
졸지에 박탈한 셈이다.

지점장급 이상에게 제공했던 승용차도 임원이 아닌 경우 모두 회수했다.

휴대전화기 PC 등 업무 편의를 위해 지원하고 있는 비품들도 사용을
최대한 억제, 통신비용을 30% 이상 절감토록 하는 조치도 뒤따랐다.

점심식사에 대한 보조비를 없앤 건 물론이다.

회사로서는 그동안의 "거품"을 빼는 초보적 조치임에도 주재원들이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그룹의 주재원들은 다른 대기업 지상사원들에 비하면 "행복한
푸념"을 하고 있는 셈이다.

또다른 국내 굴지의 D그룹.

이 회사는 미 달러화로 했던 주재 경비 지급 기준을 원화로 전격 변경했다.

그것도 기존의 주재비 개념을 폐지하고 본사에서 받는 봉급의 1.5배만을
주는 시스템으로 바꿨다.

주택 렌트비조차 제대로 충당하기 버거운 수준으로 삭감한 것.

"경악"을 금치 못한 주재원들에게 본사에서 내린 배경 설명은 이랬다.

"지금은 전시다.

"생활"이 아닌 "생존"이 걸린 상황이다.

보릿고개를 넘는다고 생각하라"

금융위기의 직접 당사자인 은행 증권 등 금융기관과 L그룹, 또다른 S그룹
등은 주재원들을 최고 50%까지 철수시키는 충격요법을 단행했다.

지사.상사만 그런게 아니다.

대학가는 "폭격"을 맞은 뒤끝의 모습이다.

뉴욕의 경우 콜럼비아대 뉴욕대 등의 캠퍼스 타운에서 한국 학생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정규 대학원 과정에 재학중인 소수의 학생들 이외에 연간 3만5천달러
안팎의 비싼 학비와 기숙사비를 써가며 이들 대학의 "랭귀지 스쿨"을 점령
했던 "어학 연수생"들은 작년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썰물처럼 한국으로 빠져
나갔다.

한국의 학생이 전체의 50%에 육박해 "뉴욕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대한수출
상품"이란 우스갯 소리를 들었던 맨해튼의 줄리어드음대.

벤츠를 굴리며 펑펑 용돈을 써대는 한국 유학생들 덕분에 톡톡히 "코리안
특수"를 누렸던 캠퍼스인근의 카페 드레스숍 등이 전전긍긍하기 시작햇다.

본국에서 안식년 휴가를 얻어 미국 대학에 와있던 한국인 교환교수들은
1년의 기간을 채우지 않고 중도 귀국하는게 일반화됐다.

이처럼 "졸지 철수"를 단행하는 한국인들이 홍수를 이루면서 바빠진 곳은
이삿짐수송업체들이다.

성업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멀쩡하게 잔류가 확정된 주재원-유학생들의
집에까지 "파격 요금.안전하게 본국의 집앞으로 모십니다"는 선전문을 우송,
가벼운 항의를 받는 사례가 늘어났다.

여행사들도 부산해졌다.

하지만 이삿짐 업체들과 달리 그다지 신나는 분위기는 아니다.

왜 그럴까.

한국계 K여행사의 L사장은 "요즘 서울행 비행기편을 예약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편도를 요구한다.

다시 미국에 돌아오지 않을 사람들이란 얘기다.

이젠 여행사 장사도 문닫아야 할 때가 된 모양이다"고 말했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