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우교수의 '신창조론'] (1) '역사가 주는 선물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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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신문사.하이터치 공동기획 -
이면우 <서울대 교수>
18세기 후반 조선조의 집권층은 당쟁과 공리공론으로 소일하였다.
왕조는 부패하였고 목민관들의 수탈은 극에 달하여 농민들은 소출의 8할을
세금으로 빼앗겼다.
농민은 농촌을 떠나 유랑하였으며 민심은 흉흉하였다.
당시 일군의 실학자들은 농지개혁을 주장하였고, 양반과 중인들의 생산
활동을 권장하였으며, 과거제도를 개혁하여 실용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정당한 요구는 집권층에 의해 말살되었으며 실학파 학자들은
모두 참형을 당하거나 귀양살이로 인생을 마감하였다.
세종대왕이후 4백년만에 나타난 모처럼의 국가발전 방안이 이를 주도해야
할 집권층의 필사적인 방해로 무산되었다.
1백년이 지난 19세기 중엽 탐관오리의 폭정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동학
운동을 일으켜 국가개혁을 시도하였다.
농사만 짓던 농민들이 관군에 대항하여 일어선 것이다.
그러나 고부에 설치되었던 이들의 집강소는 일년이 채 못되어 폐쇄되었고
녹두장군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군은 그들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참형을
당하였다.
그후 조선조는 쇠락의 길을 걸었고, 대한제국을 거쳐 한일합병으로
이어졌다.
1866년에는 제너럴 셔만호가 강화도에 나타나 우리에게 수교를 요구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도쿄만에는 흑선을 타고 온 페리제독이 일본에게
문호개방을 요구하였다.
일본의 집권층은 서양문물을 배우는 국가발전의 기회로 흑선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우리는 쇄국의 길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또다시 1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는 IMF라는 제2의 흑선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지원의 대가로 시장개방과 기업의 인수합병을 요구하고 있다.
2백년 전의 탐관오리들은 농민을 수탈하였고, 1백년전의 집권층 대신들은
나라를 팔아넘겼으며, 오늘의 엘리트 관료들은 30여년동안 피눈물 나도록
노력을 기울여 얻은 경제발전을 망치고 IMF에 급전을 요구하였다.
IMF가 우리를 침략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IMF를 불러온 것이다.
IMF는 우리 조상의 얼이 우리에게 베푸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여야
한다.
IMF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조선조 집권층이 실학파들을 처형했던 것이나, 대한제국 대신들이 나라를
팔았던 것과 유사한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2백년만에 처음으로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기회가 온 것이다.
실상을 알았으니 이제 대책을 시급히 세우고 결연한 의지로 풀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필자는 1986년부터 우리 국가산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떠들고 다녔다.
발설하지 않고 혼자 생각한 것은 이보다 휠씬 이전이다.
1992년 "W이론"이라는 책자에서 우리 국가경제가 십면초가에 둘러싸여
있다고 보고하였고, 1995년 출간된 "신사고 이론 20"에서는 우리나라가
열개의 악순환 고리로 얽혀 있어 폭포수에 쓸려 내려가는 것 같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1960년대에 시작된 국가재건운동과 새마을 운동은 전쟁으로 초토화된
상황에서 잘 선택한 정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975년께부터 우리 산업의 틀을 바꿨어야 옳았다.
기술도입과 단순모방만으로는 발전에 한계가 있는 법이고 값싼 임금,
풍부한 노동력과 가격경쟁력도 우리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구호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지 않은가.
1975년까지는 선진국의 산업여건과 우리의 욕구가 묘하게 맞아떨어졌었고,
중국과 동남아 후발국들도 긴 잠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했을 때이다.
우리와 경쟁적으로 발전하던 홍콩은 금융과 서비스로, 싱가포르는 세계
무역으로, 대만은 부품산업으로 각각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적군없는 곳으로 진격하는 셈이었고 저임금 양산조립은 한국에 보장된
독무대였다.
조선조의 목민관과 중인들이 계속 농민의 희생을 강요했듯이 오늘날의
관료와 기업인들은 고임금.저효율이 해소되어야 문제가 풀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다시 전 국민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한다.
허리띠만 졸라매면 국가위기가 해소되는가.
1975년식 사고방식을 가진 관료들이 시야에서 사라져야 위기극복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지난 10월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 창립기념일에 동료교수와 학생들
로부터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왜 자꾸 우리나라가 위기라고 하는지 설명해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반도체를 공부하는 기술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국가
위기를 반도체 회로(MPU)로 표현하여 설명하였다.
정통성이 결여된 독재정권의 집권층은 권력과 금권정치로 일관하였다.
돈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정부의 관료는 정치인과 관계가 좋아야 한다.
발탁과 등용, 승진과 영전에서 실력있는 정치인과의 교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업인은 끊임없는 사업확장을 위해서 금융지원과 차관도입이 필요하였다.
이런 일들은 정치인과 관료의 도움없이는 될 수 없었다.
금융인은 은행경영보다 정치인과 관료들이 창밖에서 알려주는 대출지시신호
(Window Guidance)를 잘 따라야 했다.
임명권자 아닌가.
국가연구소는 불어나는 연구소 살림에 필요한 연구비를 더 따내기 위해서
라도 구호가 앞서는 그림자같은 연구(Shadow Research)에 몰두하였다.
대학은 학생 정원을 더 늘려받기 위해 잘못된 교육정책에 순응하였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슬이 시퍼런 사람에게는 친절하며, 넘어진 사람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준엄하였다.
이것이 부패의 구조이고 먹이사슬의 공생관계이다.
이와같은 공생관계 때문에 잘못된 관행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부정으로
일관하였다.
간혹 미처 숨기지 못해 노출되었던 문제도 곧 잘될 것이라는 낙관론으로
일관하였다.
공생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밑빠진 독에 물붓듯이 재원을 낭비하였고
시간을 끌며 사태를 호도하여 문제를 악화시켰다.
반도체연구소의 교수와 학생들의 표정이 심각하였다.
한 젊은 교수가 물었다.
이렇게 반도체 회로같이 꽉 짜인 구조가 개선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하냐고.
10월달에 한 대답은 듣기 민망한 내용이다.
몇군데가 큰 소리를 내며 망하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야 우리가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할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IMF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IMF가 없었다면 그나마 이만큼 현실을 파악하고 국가의 장래를 진심으로
걱정할 수 있었겠는가.
어려운 처지를 당했을 때 체념하면서 차라리 잘됐다고 각오를 다지는
고사성어가 있다.
흔히 전화위복이라고 하며, Blessing in disguise(위장된 축복)이라고도
표현한다.
IMF 이후 한탄과 자조의 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외채를 갚자고 한다.
그러나 외채는 어떻게 갚는가.
돈을 벌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수출밖에 방법이 없다.
허리띠만 졸라매면 수출도 늘어나는가.
외채상환에 관한 요즈음 논의는 마치 교통사고 현장에서 이미 부서진
차값을 어떻게 보상하겠냐고 논쟁하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이 빠졌다.
사고로 중상을 입은 부상자를 후송하고, 치료하고, 재활훈련을 거쳐 다시
생활인으로 복귀시키는 방법이 더욱 중요한 것 아닌가.
IMF를 접하는 우리의 반응은 반신불수 환자같이 한쪽만 움직이고 있다.
나라를 움직이는 수레에는 두개의 바퀴가 있다.
한바퀴는 경제이고 다른 한바퀴는 산업경쟁력이다.
경제가 한집안 살림에서 "가계부 작성"에 비유된다면 산업경쟁력은 "가계의
수입원 창출"에 해당할 것이며 부서진 차체의 수리비를 갚아나가는 과정을
"경제"라고 본다면 부상자 치유는 "산업경쟁력" 회복방안이 될 것이다.
정신없이 추락하고 있는 수출을 늘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른 한 수레바퀴를 보강하며 산업경쟁력을 새로이 키우는 길밖에 없다.
그러니 우선 모두가 힘을 아끼면서 냉정한 시각으로 사태를 파악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발전의 뜻을 새로이 정의하고(Redefine), 새로이 초점을 맞추며
(Refocus), 발전 방향을 새로이 가늠하고(Reorient), 새로운 길을 다시 찾아
나서야 하며(Research), 정부와 기업의 조직을 새로 구축하고(Restructuring)
정책과 사업내용을 혁신(Reengineering)하여야 한다.
이와함께 국가 분위기를 쇄신하는 부활정신(Revival)과 국민의 역동적
기운(Revitalization)을 북돋워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
30년간 눈을 감고 달리며 치닫는 과정에서 체내에 널리 퍼진 모든 악습과
폐해를 일시에 떨치고, 허망한 경제지표와 부질없는 통계숫자에 현혹되어
허덕여야했던 날개를 잠시 접고 다시 땅으로 내려 앉아야 한다(Regrounding).
고스톱을 하다가 파투가 나면 우리 민족은 어떤 조치를 취하는가.
패를 많이 모아놓은 기득권자가 제아무리 큰소리로 불평을 하더라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두말없이 화투를 새로 섞는다(Reshuffle).
[[ 약력 ]]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공과대학 졸업
<>미국 미시간대학 인간공학 박사
<>서울시장 자문위원
<>경제기획원 산업구조조정자문위원
<>서울대 공학연구소장
<>대한산업공학회 회장
<>국제컴퓨터 및 산업공학회 부회장(현)
<>미국 NPA(National Planning Association) 국제협력위원회위원(현)
<>미국 미시간대학 장기발전계획위원회위원(현)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현)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5일자).
이면우 <서울대 교수>
18세기 후반 조선조의 집권층은 당쟁과 공리공론으로 소일하였다.
왕조는 부패하였고 목민관들의 수탈은 극에 달하여 농민들은 소출의 8할을
세금으로 빼앗겼다.
농민은 농촌을 떠나 유랑하였으며 민심은 흉흉하였다.
당시 일군의 실학자들은 농지개혁을 주장하였고, 양반과 중인들의 생산
활동을 권장하였으며, 과거제도를 개혁하여 실용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정당한 요구는 집권층에 의해 말살되었으며 실학파 학자들은
모두 참형을 당하거나 귀양살이로 인생을 마감하였다.
세종대왕이후 4백년만에 나타난 모처럼의 국가발전 방안이 이를 주도해야
할 집권층의 필사적인 방해로 무산되었다.
1백년이 지난 19세기 중엽 탐관오리의 폭정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동학
운동을 일으켜 국가개혁을 시도하였다.
농사만 짓던 농민들이 관군에 대항하여 일어선 것이다.
그러나 고부에 설치되었던 이들의 집강소는 일년이 채 못되어 폐쇄되었고
녹두장군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군은 그들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참형을
당하였다.
그후 조선조는 쇠락의 길을 걸었고, 대한제국을 거쳐 한일합병으로
이어졌다.
1866년에는 제너럴 셔만호가 강화도에 나타나 우리에게 수교를 요구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도쿄만에는 흑선을 타고 온 페리제독이 일본에게
문호개방을 요구하였다.
일본의 집권층은 서양문물을 배우는 국가발전의 기회로 흑선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우리는 쇄국의 길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또다시 1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는 IMF라는 제2의 흑선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지원의 대가로 시장개방과 기업의 인수합병을 요구하고 있다.
2백년 전의 탐관오리들은 농민을 수탈하였고, 1백년전의 집권층 대신들은
나라를 팔아넘겼으며, 오늘의 엘리트 관료들은 30여년동안 피눈물 나도록
노력을 기울여 얻은 경제발전을 망치고 IMF에 급전을 요구하였다.
IMF가 우리를 침략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IMF를 불러온 것이다.
IMF는 우리 조상의 얼이 우리에게 베푸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여야
한다.
IMF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조선조 집권층이 실학파들을 처형했던 것이나, 대한제국 대신들이 나라를
팔았던 것과 유사한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2백년만에 처음으로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기회가 온 것이다.
실상을 알았으니 이제 대책을 시급히 세우고 결연한 의지로 풀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필자는 1986년부터 우리 국가산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떠들고 다녔다.
발설하지 않고 혼자 생각한 것은 이보다 휠씬 이전이다.
1992년 "W이론"이라는 책자에서 우리 국가경제가 십면초가에 둘러싸여
있다고 보고하였고, 1995년 출간된 "신사고 이론 20"에서는 우리나라가
열개의 악순환 고리로 얽혀 있어 폭포수에 쓸려 내려가는 것 같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1960년대에 시작된 국가재건운동과 새마을 운동은 전쟁으로 초토화된
상황에서 잘 선택한 정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975년께부터 우리 산업의 틀을 바꿨어야 옳았다.
기술도입과 단순모방만으로는 발전에 한계가 있는 법이고 값싼 임금,
풍부한 노동력과 가격경쟁력도 우리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구호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지 않은가.
1975년까지는 선진국의 산업여건과 우리의 욕구가 묘하게 맞아떨어졌었고,
중국과 동남아 후발국들도 긴 잠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했을 때이다.
우리와 경쟁적으로 발전하던 홍콩은 금융과 서비스로, 싱가포르는 세계
무역으로, 대만은 부품산업으로 각각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적군없는 곳으로 진격하는 셈이었고 저임금 양산조립은 한국에 보장된
독무대였다.
조선조의 목민관과 중인들이 계속 농민의 희생을 강요했듯이 오늘날의
관료와 기업인들은 고임금.저효율이 해소되어야 문제가 풀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다시 전 국민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한다.
허리띠만 졸라매면 국가위기가 해소되는가.
1975년식 사고방식을 가진 관료들이 시야에서 사라져야 위기극복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지난 10월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 창립기념일에 동료교수와 학생들
로부터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왜 자꾸 우리나라가 위기라고 하는지 설명해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반도체를 공부하는 기술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국가
위기를 반도체 회로(MPU)로 표현하여 설명하였다.
정통성이 결여된 독재정권의 집권층은 권력과 금권정치로 일관하였다.
돈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정부의 관료는 정치인과 관계가 좋아야 한다.
발탁과 등용, 승진과 영전에서 실력있는 정치인과의 교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업인은 끊임없는 사업확장을 위해서 금융지원과 차관도입이 필요하였다.
이런 일들은 정치인과 관료의 도움없이는 될 수 없었다.
금융인은 은행경영보다 정치인과 관료들이 창밖에서 알려주는 대출지시신호
(Window Guidance)를 잘 따라야 했다.
임명권자 아닌가.
국가연구소는 불어나는 연구소 살림에 필요한 연구비를 더 따내기 위해서
라도 구호가 앞서는 그림자같은 연구(Shadow Research)에 몰두하였다.
대학은 학생 정원을 더 늘려받기 위해 잘못된 교육정책에 순응하였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슬이 시퍼런 사람에게는 친절하며, 넘어진 사람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준엄하였다.
이것이 부패의 구조이고 먹이사슬의 공생관계이다.
이와같은 공생관계 때문에 잘못된 관행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부정으로
일관하였다.
간혹 미처 숨기지 못해 노출되었던 문제도 곧 잘될 것이라는 낙관론으로
일관하였다.
공생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밑빠진 독에 물붓듯이 재원을 낭비하였고
시간을 끌며 사태를 호도하여 문제를 악화시켰다.
반도체연구소의 교수와 학생들의 표정이 심각하였다.
한 젊은 교수가 물었다.
이렇게 반도체 회로같이 꽉 짜인 구조가 개선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하냐고.
10월달에 한 대답은 듣기 민망한 내용이다.
몇군데가 큰 소리를 내며 망하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야 우리가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할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IMF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IMF가 없었다면 그나마 이만큼 현실을 파악하고 국가의 장래를 진심으로
걱정할 수 있었겠는가.
어려운 처지를 당했을 때 체념하면서 차라리 잘됐다고 각오를 다지는
고사성어가 있다.
흔히 전화위복이라고 하며, Blessing in disguise(위장된 축복)이라고도
표현한다.
IMF 이후 한탄과 자조의 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외채를 갚자고 한다.
그러나 외채는 어떻게 갚는가.
돈을 벌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수출밖에 방법이 없다.
허리띠만 졸라매면 수출도 늘어나는가.
외채상환에 관한 요즈음 논의는 마치 교통사고 현장에서 이미 부서진
차값을 어떻게 보상하겠냐고 논쟁하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이 빠졌다.
사고로 중상을 입은 부상자를 후송하고, 치료하고, 재활훈련을 거쳐 다시
생활인으로 복귀시키는 방법이 더욱 중요한 것 아닌가.
IMF를 접하는 우리의 반응은 반신불수 환자같이 한쪽만 움직이고 있다.
나라를 움직이는 수레에는 두개의 바퀴가 있다.
한바퀴는 경제이고 다른 한바퀴는 산업경쟁력이다.
경제가 한집안 살림에서 "가계부 작성"에 비유된다면 산업경쟁력은 "가계의
수입원 창출"에 해당할 것이며 부서진 차체의 수리비를 갚아나가는 과정을
"경제"라고 본다면 부상자 치유는 "산업경쟁력" 회복방안이 될 것이다.
정신없이 추락하고 있는 수출을 늘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른 한 수레바퀴를 보강하며 산업경쟁력을 새로이 키우는 길밖에 없다.
그러니 우선 모두가 힘을 아끼면서 냉정한 시각으로 사태를 파악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발전의 뜻을 새로이 정의하고(Redefine), 새로이 초점을 맞추며
(Refocus), 발전 방향을 새로이 가늠하고(Reorient), 새로운 길을 다시 찾아
나서야 하며(Research), 정부와 기업의 조직을 새로 구축하고(Restructuring)
정책과 사업내용을 혁신(Reengineering)하여야 한다.
이와함께 국가 분위기를 쇄신하는 부활정신(Revival)과 국민의 역동적
기운(Revitalization)을 북돋워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
30년간 눈을 감고 달리며 치닫는 과정에서 체내에 널리 퍼진 모든 악습과
폐해를 일시에 떨치고, 허망한 경제지표와 부질없는 통계숫자에 현혹되어
허덕여야했던 날개를 잠시 접고 다시 땅으로 내려 앉아야 한다(Regrounding).
고스톱을 하다가 파투가 나면 우리 민족은 어떤 조치를 취하는가.
패를 많이 모아놓은 기득권자가 제아무리 큰소리로 불평을 하더라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두말없이 화투를 새로 섞는다(Reshuffle).
[[ 약력 ]]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공과대학 졸업
<>미국 미시간대학 인간공학 박사
<>서울시장 자문위원
<>경제기획원 산업구조조정자문위원
<>서울대 공학연구소장
<>대한산업공학회 회장
<>국제컴퓨터 및 산업공학회 부회장(현)
<>미국 NPA(National Planning Association) 국제협력위원회위원(현)
<>미국 미시간대학 장기발전계획위원회위원(현)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현)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