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국민연금제도 개선기획단이 제시한 국민연금 개편안에 대해
시민단체 등 국민들의 반대가 적지않다.

지나치게 재정안정만을 고려해 서민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비판적 시각의 골자다.

연금수지악화의 상당한 책임이 정부의 기금운용잘못에 있는데도 그
책임을 국민부담 증가로 전가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기획단이 제시한 내용을 보면 그런 감이 없지않다.

이미 올해부터 9%로 올린 가입자보험료를 2010년이후에도 단계적으로 인상,
2025년에 12.65%가 적용되도록 하고있다.

또 현재 평균소득의 70%로 돼있는 연금지급액은 40%수준으로 줄이고
수급개시연령도 60세에서 65세로 늦추기로 했다.

사실 연금재정운용의 실상을 따져 보면 보험료율의 인상은 불가피한 면이
없지않다.

현행 제도대로 간다면 완전노령연금의 지급이 개시되는 오는 2008년까지는
기금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나 그 이후에는 지출이 급격히 증가하여
2020년에는 당해년도 재정수지가 적자로 반전되고 2031년에는 기금이 완전
바닥날 것이라고 한다.

돈만 내고 연금혜택은 받아보지도 못하는 사태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제도를 존속시키려면 보험료를 올리거나 연금을 적게
받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기획단이 제시한 개편방향에 대해 이론을 달기는 어렵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연금지급액을 소득의 40%수준까지 낮추는 것은
노후생활보장이라는 사회보험 본래의 목적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제도개편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개편안에 대해 개악이라는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 것은 그런 점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기획단이 제시한 개편안을 토대로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다시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그과정에서 기금적자의 모든 책임을 가입자부담으로 하려는 안이한
발상을 버리고 정부의 노력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기금의 공공부문투입으로 인한 낮은 수익성을 개선해야하는 것은 물론
방만한 관리비용을 절감하고 기금운용의 투명성을 제고 시킴으로써 국민
불신을 제거하는 것도 잊지말아야 할 일이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여 주문하고 싶은 것은 안이한 정책판단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혼란을 가져오는가를 새삼 되새겨야 한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이 파산지경에 이른데는 이 제도가 도입당시부터 지키기 어려운
공허한 설계로 구조적 불안을 안고 태어났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다.

때문에 이번 국민연금 개편안의 논란이 주는 교훈은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수많은 공약들이 난무했고 그 중 상당부문은 지키기
어렵거나 서로 상충되는 것들도 적지않다.

따라서 집권당이 공약에 얽매이다 보면 국민연금제와 같은 낭패를
되풀이할 공산도 크다.

새정부를 이끌어 나갈 정치권과 정책당국자들은 이점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