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무용계에서는 직업무용단의 활발한 활동과 젊은 무용가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무용계 역시 경기불황의 여파로 침체양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외국단체 초청공연과 국내단체 해외공연이 눈에 띄게 감소했으며 소품을
묶는 연작물이 늘어난 반면 제작비가 많이 드는 장편은 줄어들었다.

기업의 협찬을 구하기 어려워 개인공연은 급감했고 비교적 안정된 기반을
갖춘 직업무용단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활발했다.

창작면에서는 전반적으로 부진했으나 대중화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장르별로는 최근 몇년동안 꾸준히 지속돼온 발레붐이 지속돼 발레의
대중화가 이뤄졌다.

국립발레단의 최태지, 유니버설발레단의 문훈숙, 서울발레시어터의
김인희씨 등 30대 단장들의 의욕적인 활동이 결실을 거둔 셈.

국립발레단은 "해설이 있는 금요발레"를 통해 발레의 저변확대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서울발레시어터는 예술감독 로이 토비아스의
칠순을 맞아 아메리칸 발레시어터의 주역 무용수 줄리 켄트를 초청,
대규모 갈라페스티벌을 개최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뉴욕 시티발레단이 처음 내한, 발란신과 제롬 로빈스,
그리고 현 예술감독인 피터 마틴스의 안무작을 통해 발레의 진수를 선보인
것은 올 무용계의 수확.

국립발레단의 주역무용수 김용걸씨가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하고, 김씨와 2인무를 춘 배주윤씨가 특별상을 받으며 한국발레의
위상을 높인 것도 경사였다.

세계연극제, 광주비엔날레같은 국제행사에서 춤예술의 국제교류 기반을
넓히고 표현영역을 확장한 것은 고무적 현상이었다.

세계연극제기간중엔 외국무용단이 잇따라 내한, 다양한 색깔의 작품들을
만날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프랑스의 마기 마랭무용단을 비롯, 독일 쟈사 발츠무용단, 헝가리의
이베트 보직무용단등이 초청돼 기발한 소재, 일상적인 동작을 차용한 춤,
극적인 형태의 춤으로 현대무용의 재미를 일깨워줬다.

이밖에 "죽산페스티벌" "창무국제예술제" 등을 통해 국제교류와 함께
우리춤의 세계화 가능성을 모색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올해는 또 남성 무용가들의 활약이 돋보인 한해였다.

97 서울국제무용제 대상작을 안무한 손관중,연기상을 수상한 노현식과
김남식을 비롯 홍승엽 박호빈 이원국 박해준씨 등이 활발히 활동했다.

지역무용의 성장세도 두드러졌다.

중견무용가 김화숙씨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전북 이리의 사포
현대무용단이 광주민주화항쟁을 소재로 한 "편애의 땅"을 내놔 호평을
받았으며, 구본숙씨가 이끄는 대구시립무용단의 "연어에 관한 보고서"도
수작으로 평가됐다.

국내무용단의 해외진출도 꾸준히 시도됐다.

국립발레단은 이스라엘과 이집트, 유니버설발레단과 서울발레시어터는
일본, 국립무용단은 중국에서 각각 공연했다.

김말애 춤타래무용단은 로스앤젤레스에서, 김복희 현대무용단은
과테말라와 이집트에서 무대를 꾸몄다.

재미무용가 손인영씨도 국립국악원연주단과 함께 미국 8개 도시를
순회하며 "한국의 춤과 소리"공연을 가져 뉴욕타임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한편 재외무용가인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강수진씨와
스타니슬라브스키 발레단의 스베틀라나최, 볼쇼이발레단의 배주윤씨가
일시 귀국, 국내발레단들과 함께 공연을 가졌다.

이밖에 유네스코국제무용협회(CID)한국본부의 설립, "국제현대무용사전"에
11명의 현대무용안무가의 이름이 오른 것,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생들로
구성된 크누아무용단이 창단돼 춤계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도 뉴스였다.

한편 올해 19회째를 치른 서울국제무용제는 참가작의 수준차가 크고
전체적인 열기도 낮아 축제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 양준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