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들 주변에서 IMF 국면과 관련한 숱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최소한의 절제된 이성으로 새로운 국면에 냉철히 대응해야 할 것을 제언
하면서 감성적인 용어의 남발, 무책임한 인기영합의 발언, 그리고 여과되지
않은 말의 남용은 제발 자제되기 바란다.

우선 IMF 상황의 전개와 관련, 우리들은 국치니, 경제신탁통치니 하는
지극히 수모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물론 어제까지 호기에 찬 이 나라의 모두에게 어이없게도 경제파국과 국가
부도와 같은 현실앞에서는 이러한 격앙된 표현이 자연스러울지 모르나 이로
인한 폐해는 엄청난 일이다.

지난날 우리나라 경제기반의 확충기에 세계은행(IBRD)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의 국제 금융기구로부터 숱한 돈을 빌려 왔고 우리는 어김없이 차관협정
(loan agreement)을 맺어 차관 공여자의 모든 요구조건을 합의된 내용
그대로 수용했던 것이다.

70년대초 항만 철도 도로건설에 투입된 많은 규모의 IBRD 차관과 ADB 등의
차관협약에는 이 협약의 집행 이행부터 국장급의 신상변동에 관해서도 차관
공여자에게 사전적으로 협의(consultation in advance)해야할 정도로
차입자의 준수사항이 기록되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수모적인 조항은 결국 우리들의 성실한 이행과 눈부신 경제성장에
힘입어 점차 사라지고 70년대중반 이후부터는 상당히 포괄적인 협약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어려운 협상을 마치고 이제 자금의 일부가 실제 들어온 이 시점에서도
우리의 금융시장과 경제는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는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IMF와 기본협약을 끝내고 자금의 유입이 개시되면 곧이어 외화 보유고의
안정성 제고, 대외 채무에 대한 신뢰성의 확보, 나아가 외국 투자자의
재상륙 등 일련의 메커니즘 작동에 의한 금융시장의 정상화 수순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사정은 전혀 그러하지 못하다.

이러한 상황의 전개에는 기본적으로 대선 이후 국정향배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일부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발언에 따라 투자자들의 한국 신인도
수용에 혼란이 뒤따르는데 있었다고 하겠다.

우리는 지난날의 여러가지 교훈을 갖고 있다.

일단 협상을 마치고 양자가 합의한 경우 남은 일은 차입자는 약정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고, 공여자는 성과 점검계획에 따라 이의 검토와 확인이 있을
뿐이다.

만족스러운 상황이 아니면 언제든지 자금공급도 중단될수 있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도외시하고 불만스런 협약의 근간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논쟁했던 것은 결국 우리의 불성실한 자세를 그대로 바깥 세상에
비추게 되고 신뢰성의 결여로 각인되어져 결과적으로 끝없는 금융시장의
혼미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일단 합의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는 과정에서 변화된 상황과 여건을
전제로 약정사항의 부분적 수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위기극복을 위한 신뢰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일이다.

이어서 IMF 국면을 지나치게 비관적 상황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일이다.

이로 인해 경제활동마저 편향적 사고로 받아들이는 현실이 안타까운 일이다.

IMF 협의의 근간은 저성장의 유지과정을 거쳐 경상수지의 균형을 추구하고
궁극적으로 경제기반을 새로이 구축하는 일이다.

이를 위한 산업의 구조조정,시스템의 재정비가 필수적임도 두말할바 없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수행에는 불가피하게 이미 계획된 정부의 국책사업에도
마땅히 영향이 미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사려가 있는 정책의 입안자는 어느 경우라 하더라도 국민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장래를 예측할 수 있는 기본정책의 틀을 흩뜨려서는 안될
것이다.

이 가운데 경제 활동의 근간으로서 사회간접자본의 지속적인 확충은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지속되어져야 예상되는 앞날의 경제회복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재정의 축소 운영에만 매달려 타당성과 우선순위에 혼돈을
가져와 생산기반으로서 SOC투자를 제로화하는 경우 새로이 정책의 우를
범해 우리 경제성장에 걸림돌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보다 성숙하고 절제된 이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어느 면에서든 우리들이 직면한 경제위기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의 극복을 지나치게 단세포화할 일은 아니다.

일체의 정체 내지 금지된 생활의 전환은 지금의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경제전반에 심각한 영향의 파급을 가져와 정말 경제공황의
위기국면으로 내몰릴지 모를 일이다.

우리의 경제가 살아 숨을 쉬어야 하겠기에 우리들 모두는 절제된 이성으로
우리들의 생활을 영위하는 지혜로움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