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치른 제15대 대통령선거의 개표결과를 지켜보느라 늦은 밤까지
집집마다 불빛이 환했다.

전국 3백3개 개표소에서 모아지는 각후보들의 득표현황에 대한 TV의
중계는 정말 "빅중계"였다.

투표일까지 선두다툼이 치열해 승부가 박빙으로 결판날 것이라는
예고탓인지 가족이 한데 모여 저녁 이른시간부터 새벽녘까지 TV를 실컷(?)본
가정이 적지않은 것 같다.

선거때만 되면 결과가 궁금해서 많은 사람들이 늦은 밤까지 자지않고
있지만 아마 이번 선거만큼 다수의 국민이 밤을 밝힌 때는 없을 것이다.

밤샘한 사람의 숫자가 사상 가장 많았던 밤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박정희 대통령과 윤보선 후보가 맞붙은 대통령선거 때 표차가 근소해
당락을 새벽까지 점치기 어려웠었다.

당시도 밤샘인구가 꽤나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요즈음보다 TV보급률이 낮고 유권자와 인구수가 적어 밤샘에
동참했던 사람수는 어제에 비할바가 못됐을 것 같다.

이번 개표에서는 은행에서 돈세는 기계까지 빌려다 놓고 개표시간을
2시간가량 단축시키려고 애를 썼다고 하지만 긴장감 넘치는 선두다툼은
많은 이를 밤늦게까지 TV앞에 잡아놨다.

"밤샘"은 우리민족에게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한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에는 밤을 새우는 풍습이 있다.

"해지킴"또는 수세라 하여 방 마루 곳간 장독대 등 집 곳곳에 불을 밝히고
남녀가 새벽이 될때까지 자지않고 밤을 새웠다.

섣달 그믐밤을 제야 또는 제석이라 부르며 윷놀이를 하거나 세투라 하여
투전이나 화투를 하면서 보내기도 했다.

지금도 일상생활속에 밤샘을 하는 경우가 있다.

상가에서의 밤샘은 남자어른들에게는 가끔 있는 일이다.

입시준비중인 학생은 밤샘을 밥먹듯 한다.

친구나 친지의 집들이 또는 명절때에는 "고스톱"등을 하면서 밤샘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어제의 밤샘은 우리국민에게 의미가 다르다.

국가경제가 어려운 IMF체제하에 있고 21세기가 얼마 남지않은 시점이다.

이날의 "대규모 밤샘의 뜻"을 당선자가 한번쯤 헤아려 봤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