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 프로따더니 국내 시합은 모두 휩쓸더구나. 너에게 애비가 다
양보한다 쳐도 누구나 그 친구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할 거다"

그러자 영신이 진지하게 말한다.

"아버지, 미화하고 아버지의 나이와 비교하면 우리는 반도 안 돼요. 미화를
누가 떼어놓으면 아버지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래서 요새 심각하게 너의 결혼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놈은
10년이 못 가서 역시 너를 배신할 거야"

"그럴 수도 있어요. 아니, 아버지의 말씀이 맞아요"

"그러면 내 말을 따라야 할 것 아니냐?"

김치수가 부드럽게 말한다.

미화를 사귀면서부터 그는 아주 부드러운 남자가 되었다.

쌀쌀맞고 비정함성이 목화솜처럼 풀릴 때가 많아졌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십년 뒤의 일을 생각하고 지금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포기해야 할까요? 그때 가면 또 그때의 태양이 뜨겠죠.
아무튼 지금은 정말 헤어지기 힘들어서 그래요"

김치수는 생각한다.

만약 누가 미화를 버리라고 하면 버릴 수 있을까?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미화가 도망이라도 간다면 몰라도 지금 미화를 놓을 수는 없다.

딸의 마음도 그것일 것이다.

나중에 버림을 당하더라도 지금은 아니다.

사랑한다.

결코 헤어질 수가 없다.

김치수는 딸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면서, "네가 스스로 선택해서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마"

그러면서 딸을 그윽한 마음으로 껴안는다.

이때 미화가 찻잔을 받쳐들고 들어오다 멈칫 한다.

"미화양, 거기 놓고 나가 있어요. 오늘은 오랜만에 김이사와 함께 점심을
먹을 테니까. 세명이 간다고 한정식 집에 연락을 해둬"

"네, 회장님"

미화는 훈련이 잘 된 비서의 역할을 잘 해낸다.

"아빠, 요새 엄마 눈치가 좀 이상해요"

"어떻게?"

"아빠가 너무 모양을 내신다고, 혹시 바람난게 아니냐고 하셨어요?"

"그래서 뭐라고 했니?"

"향수도 내가 사드리고, 운동도 내가 함께 모시고 다닌다고 했어요. 그런데
육감이란 참 대단한 거에요. 미화 양의 목소리만 듣고 새 비서가 왔느냐고
물으시더라구요"

김치수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묻는다.

"살모사를 먹기 좋게 만들어 오라고 하셨다면서요?"

"응. 그건 저, 좋은 데 취직시켜주었다고 미화 양의 어머니가 보내왔어"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