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황의 광란속에서 중소기업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다.

공장을 돌리자면 직원들 월급주고, 원자재대금 주고, 전기세 수도세를
내야 하는데 납품하고 받은 어음은 할인이 안되고, 그나마 언제 부도날지
몰라 전전긍긍해야 하니 휴폐업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중소기업들이 다 쓰러질 것이고 설혹 금융공황을
벗어난다 해도 이미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은 철저히 파괴된 뒤일 것이다.

관계당국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국가비상사태를 맞아서 중소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라며 특히 다음 몇가지 방안을 즉각
시행해주기 바란다.

무엇보다 먼저 납품대금으로 받은 진성어음을 은행이 전액 할인해주도록
해야 한다.

지금 은행들은 BIS 자기자본비율을 올리는데 급급해 몸을 사리니 중소기업
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마저 돈을 구하지 못해 난리다.

최근에는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받은 신용보증서를
제시하며 대출을 요구해도 이를 거절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신용보증기금의 운용배수를 17배에서 20배로 확대하고, 한국은행의
총액대출한도를 1조원 확대한 정부의 조치도 처음 기대와는 달리 효과가
없다.

이미 정부는 연기금의 후순위채권 매입, 성업공사 또는 예금보험기금에서
발행한 국공채와 부실채권 교환 등을 통해 BIS 자기자본비율을 올리는데
발벗고 나섰다.

또한 신용보증기금에서 신용보증서를 받으면 정부의 대위변제가 보장돼
떼일 염려가 전혀 없는데도 BIS 자기자본비율을 핑계로 대출을 꺼리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본다.

따라서 금융중개기능을 상실한 은행에 대해서는 정부지원도 차등을 둬야
한다고 본다.

둘째로 부도난 진성어음을 담보로 운전자금을 대출해주도록 촉구한다.

올해들어 대기업들이 줄지어 쓰러지면서 협력업체들이 납품대금으로 받은
진성어음들이 휴지조각이 돼버려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정부에서는 은행이 부도어음을 담보로 일반대출을 해주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최근 금융시장이 마비되자 감감무소식이고 해당업체들은 기진
맥진한 상태다.

셋째로 기존 대출의 만기를 연장해줘야 한다.

지금처럼 비상시국에는 이같은 조치는 기업은 물론이고 은행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부실채권이 발생하고 이는 다시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을
끌어내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은행이 기존대출을 2개월동안 연장해주기로 했지만 부실금융기관의
정리가 가닥이 잡힐 내년 상반기까지는 대출연장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끝으로 금융대란을 틈탄 꺾기 등을 단속하고 금리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부도를 면하기 위해 금리를 따지지 않고 돈을 끌어대기 바쁜 틈을 노리고
일선 창구에서는 심한 경우 대출금의 50%를 꺾는 사례까지 보고되고 있다.

제발 금융기관들은 기업이 살아야 자신들도 살 수 있음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