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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섬우화] (284) 제10부 : 마지막 게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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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화는 그날 김치수 회장과 같이 볼링장에 갔다.

    김치수는 젊은 남자들처럼 힘이 좋다.

    뾰족한 방망이 같은 볼을 전부 팍 팍 쓰러뜨리니까 그 볼링장의 미남
    코치와 두 손을 벌려 손바닥을 부딪치면서 환성을 지른다.

    그 코치는 정말 친절하게 기분을 잘 맞추어준다.

    미화는 모든게 김회장의 돈 때문일 것이라고 단정한다.

    미화는 시인 강은자 아줌마가 김회장 어른을 회장이라고 안 하고 황제처럼
    요란스레 떠받드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녀는 김치수 회장이 별로 잘 생기지는 않았어도 깨끗한 인상의
    영감님이라고 지레 황송해지기도 한다.

    눈치 하나는 대단한 미화다.

    어려서부터 그녀의 별명은 "빠끔이"였다.

    눈치가 여우같아서다.

    오후 여섯시에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사무실 옆에 붙은 차마시는
    테이블에서 머루포도 한송이 뿐이다.

    "하이고오, 저는 이렇게 먹고는 못 견뎌유. 회장님, 저는요 무엇보다도
    저녁을 잘 먹어야 그 다음날 아침에 힘을 쓴다요"

    "좋다. 그럼 우리 미화는 무엇을 먹고 싶은데? 한식 중식 양식? 무엇이든
    사달라는대로 사 줄거구마"

    "그러면 저는요, 그 간짜장을 한 그릇, 아니 더 사주실 수 있다면 소고기
    탕수육을 먹고 싶어유. 오늘 하루종일 회장님 모시고 다니느라 쪼깨 배찌가
    고프구먼유. 내일 아침 7시부터 근무하려면 포도 한송이로는 어림도
    없구먼유"

    "하하하하, 시켜주구 말구. 우리 아예 중국식당으로 유명한 집으로
    갈구마?"

    그도 오랜만에 시골사투리를 써본다.

    너무도 흐뭇하다.

    구수하고도 맘 편하고 웃긴다.

    절로 웃음보가 터진다.

    "회장님은 피곤도 안 하셔유? 저는 마 신경을 너무 써싸서 아주 녹초가
    됐구먼유"

    "수행비서가 쉬운 게 아니다. 네가 원한다면 이제부터 네가 하고 싶은
    운동하는데 내가 따라다녀주마"

    "호호호호, 회장님이 저를 따라다니신다구요? 저는요 디스코테크 같은
    곳을 좋아해유. 돈있는 남자를 못 만나서 얌전하게 혼자 라디오에 맞추어
    흔들었지만요.

    운동치고는 최고가 이닌감요? 밴드에 맞추어 흔들면 오만가지 스트레스가
    다 빠져나가요"

    "미화양은 이렇게 예쁜데 애인도 없는가?"

    "있었는데 군인갔시유. 그리고 제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구먼요.

    은제 제대하고 은제 기술 배워서 결혼을 하겄시유? 전세방이라도
    장만하려면 뼛골 빠질 것 같아서 갈라서자고 그랬시유. 그러니께 저는
    자유로운 몸이라요.

    누구를 사랑해도 거리낄게 없어라우"

    그녀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나이를 잊는다.

    너무도 그녀가 천진하고 천의무봉이어서 정신을 잃을 지경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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