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토끼(코닥)를 거북이(후지)가 따라 잡고 있다.

필름업계의 영원한 라이벌인 코닥과 후지가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을 놓고
벌이는 한판 대결은 이렇게 요약된다.

시장점유율로 따지면 후지는 아직 코닥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대세는 거의
후지쪽으로 기운 상태라는 것이다.

올초 후지 미국본사는 필름재고를 이유로 가격을 최고 25%까지 내렸다.

필름 판매량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과거 수년간 벗어나지 못했던 한계인
10%대의 시장점유율을 깨고 지난 3분기에 16%까지 끌어올리는 대성공을
이뤘다.

이는 가격인하에 따른 1회적 현상이 아니다.

미국에서의 생산시설 유통망확보 등 현지화전략이 뒷받침되고 있다.

작년 월마트 소유의 6개 사진인화공장을 4억달러에 인수해 인화.현상분야에
서 미국시장내 15%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했다.

지난 4월엔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우드에 인화지공장을 설립, 북미지역
인화지 공급량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푸르덴셜증권사에서 필름업계를 12년동안 연구분석해온 알렉스 핸더슨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후지는 내년에 코닥을 따라 잡을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코닥은 자국내 시장점유율 80%선이 무너졌고 75%까지 내려앉는
치욕을 맛보고 있다.

비즈니스위크지조차도 "코닥은 지금 창업 1백18년만의 최대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말할 정도다.

올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대비 40% 떨어졌다는 소식은 월가에 충격을
던지면서 연초 주당 92달러였던 코닥주가가 60달러대로 추락했다.

후지의 약진과 코닥의 위기로 설명되는 현 상황은 후지의 비용절감을
골자로 한 슬림화경영이 미국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반증이다.

후지는 일본 대기업 가운데 가장 슬림화된 기업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오니시 미노루 회장은 17년간 한결같이 사무직의 인원감축을 외쳤다.

과거 10년간 전세계 매출이 두배이상 증가했음에도 일본내 스태프진의
수는 변하지 않았다.

이같은 슬림화노력으로 후지의 1인당 매출액은 코닥의 두배에 달한다.

필름가격인하도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조지 피셔 코닥회장이 지난 10월 1천명에 달하는 경영진 가운데 2백명을
자른 것도 후지의 슬림화 경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11일 대규모 감원을 내용으로 하는 회사 구조개편 계획도 같은
맥락이다.

9만4천명에 이르는 종업원을 1만4천명정도 줄여 8만명 수준으로 유지하고
10억달러 상당의 경비절감과 합작투자확대 등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국내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필름가격 인하도 고려중이다.

코닥이 더욱 위협을 느끼고 있는 점은 후지의 튼튼한 재정상태.

그만큼 필름가격을 추가 인하할 여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후지필름 가격은 지난해말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다.

후지는 작년 매출 11억달러에 순이익 7억5천7백만달러를 기록했다.

현재 현금의 사내 여유자금만도 45억달러로 추정된다.

여기에다 일본의 저금리덕택에 연2.5%대의 싼 자금을 무한정 빌릴 수 있다.

반면 10억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는 코닥은 갈수록 판매감소와 이익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다 연7%이하로는 자금을 대출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신제품개발에서도 후지가 한발 앞서고 있다.

매출의 7%를 R&D(연구개발)에 투자, 기술개발에 남다른 의욕을 보이고
있다.

지난 86년 1회용카메라를 개발한 것도 후지였다.

후지는 최근 차세대 카메라로 꼽히는 APS(advanced photo system)용 24mm
필름을 개발해 ''기술의 후지''를 과시하기도 했다.

SBS워버그의 분석가인 토비 윌리엄은 "후지의 강점은 소비자들이 새상품을
언제든지 구입할 수 있다는 신념을 주는 것"이라며 "후지는 실제로 소비자들
에게 신상품을 다른 업체보다 앞서 출시한다"고 설명했다.

사활을 건 후지와 코닥의 경쟁은 그러나 외부세력의 강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디지털카메라 보급에 따른 전통적인 필름시장의 쇠퇴전망이 그것이다.

올해 전세계적으로 1백80만개의 디지털카메라가 팔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양사는 이같은 상황에 대비,디지털카메라사업에 이미 뛰어들었지만 현재
20여개사가 난립돼 있는 상태여서 쉽게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다.

<장진모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