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생산에 과잉투자를 해온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제조업체들은 D램가격
의 잇단 하락과 자국 증시 및 외환시장의 혼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그 후유증은 한국메이커들이 훨씬 심각하다고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1일 발간된 최근호에서 "한국의 반도체메이커들은 대부분
자금조달을 차입에 의존,반도체공장을 대규모로 확장하고 있으나 반도체
가격의 급락과 한국증시 및 원화가치의 폭락으로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에반해 대만메이커들은 "자기자본으로 공장을 지은데다 공장규모도
한국과 달리 소규모여서 반도체시황과 금융시장 변화에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위기에 처한 한국과 대만반도체메이커들을 비교 분석한 내용을 요약 소개
한다.

앨런 그린스펀 미 FRB의장은 지난 29일 의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국증시와
원화가치가 지난 95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하게 된 배경에는 반도체메이커들
의 과잉투자가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증시가 5년째 침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원화도 하락하는
상황에서 삼성 현대 LG 등 반도체 3사는 일본메이커들을 따라잡기 위해
지난 90년초부터 생산규모를 대규모로 늘려 왔다.

이들 3사는 지난해에만 80억달러를 생산공장을 확대하는데 쏟아부었다.

이는 D램 주력시장인 PC판매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지난 95년부턴 연간 25%씩 늘어나던 PC시장이 지난해의 경우
증가율이 16%로 주춤한데다 D램의 공급과잉으로 16메가D램의 현물가격이
1년전만해도 개당 50달러를 웃돌았으나 현재는 10달러에도 못미치는 등
폭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반도체업체들의 부채규모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부채규모는 90년대초만 해도 자기자본의 7배에 달했으나 반도체경기 호황
으로 많이 개선되기는 했다.

그러나 스위스 증권사인 SBC워버그측은 "D램가격의 하락으로 부채규모가
3배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국메이커들은 반도체가격과 원화가치가 폭락하는 상황에서도 차입금을
상환해야하는 시점을 맞게 된 셈이다.

반면 대만메이커들은 생산규모를 지속적으로 늘리긴 했지만 투자비를
전적으로 자기자금으로 충당했다.

게다가 대만메이커들이 확장한 생산공장은 한국과 달리 웨이퍼를 하청받아
생산하는 소규모공장(foundry)이다.

이런 공장들은 D램을 생산하다가 요즘처럼 반도체가격이 폭락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즉시 틈새시장을 겨냥, 주문형반도체 생산체제로의 전환이
가능하다.

실제로 TSM사를 비롯한 많은 대만메이커들은 반도체시황이 좋지 않자
최근들어 휴대폰용 칩이나 프로세서등을 생산하는 체제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 추세다.

반도체 과잉투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은 한국이나 대만메이커들이
마찬가지 입장이지만 위기상황을 헤쳐 나갈수 있는 여건은 이처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 런던=이성구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