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입니까? 거짓말같은 일인데요.

저는 여왕폐하께서 나오시라는 곳이면 물속이든 풀밭이든 안가리고
달려 가겠습니다"

"허하하하 정말 왜 그렇게 사람을 웃겨요.

우리병원 근처말고 하이앗트나 신라쯤이면 괜찮아요.

토요일이니까 붐빌것이고 그 다음은 박부장이 정하십시요"

"그러면 신라에서 저녁을 잡수시고 신라의 디스코텍은 어떠실까요?
디스코는 에어로빅을 추신다니까 문제가 없으실것이고"

"좋아요. 응큼하지 않아서 좋군요"

"십년공을 드린다더니 박사님과 한번 데이트하기 위해 저야말로 십년간
공을 드렸습니다.

아프터를 위해서 실수없어야 될터인데 워낙 제가 좀 모잘라요"

"그건 확실히 그러네요.

설흔여덟이 되도록 장가도 못갔으니까 뭔가 넘치지않으면 모자라는
것일것 같어요. 호호호"

"맞습니다.

저는 모자라는 남자일것 같습니다.

그리고 꼭 공박사를 닮은 버릴데 없는 여자를 찾는 욕심쟁이인지도
모르고요"

공박사는 너무도 상쾌한 기분으로 박광석와의 데이트에 큰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자기도 위험수위까지 가서 선택한 시골서 왔다는 덕보를
은자에게 인계시키려는 계획은 참으로 잘한 아이디어라고 쾌재를 부른다.

그녀는 육체적으로는 아마 덕보와 더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적인 여러 여건으로 미루어 어느모로나 박광석은 정서적으로
그녀가 찾아낸 보석 같은 남자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날 여고 동창회에서 새로운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신문에서 너무도 많은 중년남자들이 과로사를 한다고 읽었지만 진실로
다섯명중 두명은 남편과 사별했다는 사실때문에 자기와 같은 미망인들이
의외로 많음에 아연한다.

그는 더욱 최선을 다해서 박광석과의 만남을 잘 관리해야되겠다고
사회학자같은 이론을 세우는 자기가 너무나 우습고도 처량했다.

모든 도덕적 가치관은 그 시대 그 사회의 여건과 관계가 있다.

그 시대적 변화에 대처할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는 행복할 수도 있고
또 비합리적이고 전근대적인 사고를 하면 우선 정신 병리학적으로 나쁘다.

누군가가 쓴 기사를 읽으면서 전같으면 도저히 용서가 안되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자신을 본다.

동창회에서 아주 오랫만에 참으로 오랫만에 그날 공박사는 너무도 젊고
아름다워진 영신을 만난다.

"죽은것 같이 못만나던 너를 다 만나고 이 무슨 행운이냐 역시 나는
오늘 여기 나오기 잘했다"

언제나 사교적이고 서늘한 미인인 영신은 너무도 그녀의 손을 꼭 잡고
흔들어서 냉정한 공박사가 그녀를 가볍게 껴 안으며 뺨을 비비기까지 했다.

가볍게 뺨을 비비는 매너에도 그렇게도 세련미가 넘쳐흐르는 영신에게
공박사도 한없는 매력과 우정을 느낀다.

망사같은 철에 꽃무늬가 화려한 수트를 입고나온 영신을 곧 물위에
떠오른 백조같이 청초하고 우아하다.

"좋은 소시 많이 들리더라 아름다운 소문들"

그러자 영신은 예의 그 맑은 미소를 담북 띄우고 상큼하게 웃는다.

아무 거리낌없이 사쁜하게.

"우리나이에 연애를 한다는 소문보다 더 부럽게 들리는 화제가 어디
있겠니? 제발 나의 소문도 그 비슷한 달콤한 것이면 좋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