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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AI라는 구호가 사라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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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원 어피닛 대표
    [한경에세이] AI라는 구호가 사라질 때
    2015년, 정보기술(IT) 업계의 모든 회의실을 지배한 단어는 ‘빅데이터’였다. ‘데이터가 미래의 석유’라는 말이 금언처럼 돌았고,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데이터 분석가를 영입했다. 어피닛 역시 그 흐름의 한복판에 있었다. 매일 수십만 명의 사용자가 남기는 방대한 디지털 흔적을 모으고, 그 안에서 유의미한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 지상 과제였다.

    그런데 지금, 회의실이나 투자 미팅에서 빅데이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다면 빅데이터는 한때의 유행이었을까?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빅데이터는 이제 서비스의 바닥 깊숙이 녹아들어, 굳이 이름을 부를 필요조차 없는 필수 인프라가 됐다. 오늘날 우리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서비스를 만든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서비스를 운영한다”라고 말할 뿐이다. 데이터 분석 로직이 자동화된 형태로 의사결정의 모세혈관까지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2017년 무렵, 우리의 화두는 ‘머신러닝’으로 옮겨갔다. 사람이 일일이 규칙을 입력하던 시대를 지나, 알고리즘이 데이터에서 패턴을 학습하고 판단 기준을 세우는 시기였다. 우리는 이 기술을 신용평가와 위험 관리에 집요하게 적용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인간의 직관이나 단순한 통계로는 보지 못한 영역을 머신러닝 모델이 잡아내기 시작했다.

    그토록 혁신적이던 머신러닝이라는 단어조차 최근에는 사용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실패해서가 아니다. 과거 특정 예측 모델에 국한되었던 머신러닝은 이제 딥러닝과 생성형 인공지능(AI)이라는 더 거대하고 범용적인 ‘AI’ 체계 안으로 흡수되어 우리 시스템을 지탱하는 핵심 축이 되었다.

    많은 데이터는 분명 큰 자산이다. 하지만 데이터 그 자체는 ‘서 말의 구슬’에 불과하다. 그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드는 것은 결국 고도화한 AI다. AI 기반의 평가 모델과 의사결정 솔루션 없이는 아무리 많은 데이터도 그저 쌓여 있는 디지털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기술의 이름은 빅데이터에서 머신러닝, 딥러닝, 그리고 생성형 AI로 숨 가쁘게 바뀌어 왔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정확하고 공정한 기회를, 더 빠르고 안전하게 제공할 것인가?’ AI는 결국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일 뿐이다.

    나는 언젠가 AI라는 구호가 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그 기술은 투명해지고 배경으로 물러난다. AI가 마침내 공기처럼 비즈니스 환경에 스며드는 날, 우리는 다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주고 있습니까?”

    우리는 앞으로 훨씬 더 정교한 모델을 만들 것이다. 기술적 난도는 높겠지만, 지향점은 명확하다. 우리가 진짜 잘하고 싶은 것은 AI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향하는 사람이다. AI라는 단어가 촌스럽게 느껴지는 날, 비로소 AI는 제 역할을 다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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