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넘치는 직장생활이 좋아요.

한국에서는 직장에서 인간관계만 잘 맺으면 사는데 어려움이 없는
것 같아요.

동료나 상사들이 오누이처럼 돌봐주시고"

대우전자 해외세일즈팀의 이해연(26)씨는 지난 85년에 가족이
아르헨티나로 이민가 그곳에서 중.고교를 마쳤으나 고국이 그리워 지난
91년 고려대 서어서문학과에 입학한후 94년부터 대우에 몸담고 있다.

능통한 스페인어솜씨와 남미식 매너로 도미니카에 세탁기 10만대를
파는 성과를 올렸다.

그는 직장사회에서 힘든 것으로 우선 너무 많은 결재단계와 권위주의적인
분위기를 꼽았다.

그나마 입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팀제가 도입되는 바람에 이런 장애들이
허물어진게 다행이라고.

외국대학이 직장및 사회생활에 대비한 실무교육을 중시하는 것과 달리
국내대학은 절대적인 이론위주의 교육이어서 직장 초년병시절에는 적응이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능력보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조직.승진체계도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외국의 팀장은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고 솔선수범해 사업을 꾸려나가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아직도 체계와 전문성이 부족하고 열성이 약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한국남자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여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약하다"며
"처음 한국에 와서 버스를 타거나 식당문을 드나들때 "레이디 퍼스트"가
통용되지 않아 삭막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또 "신세대 직장인들이
그나마 나이 지긋한 선배들보다 여자를 위할줄 안다"며 "신세대가
권위주의적인 상사들에게 무언의 반항을 하는 모습이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LG그룹 해외사업개발팀의 세바스찬 윤(29)씨는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중.고.대학을 나왔다.

94년 9월에 입국해 연세대 국제대학원을 수료하고 96년 9월부터 LG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에서 마케팅 재무관리를 전공한 그는 해외시장조사를 통해 LG그룹이
진출할 지역과 사업아이템을 컨설팅한다.

윤씨는 한국말이 아직도 서툴다.

고국에 들어와서 한국생활에 많이 적응됐지만 아직도 미국식 사고는
남아있다는 그는 종종 한국식으로 행동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불편하다고.

특히 LG에서 일하는 하얀 피부색의 미국인에 대해서는 주위사람들이
외국인의 특성을 십분 고려해주는데 반해 자신에 대해서는 이를 무시하려는
경향이 다소 당황스럽다고 털어놓았다.

반면 상사들은 기분이 나쁘면 한국토종 직장인들에게는 한국어로
강압적이며 노골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는데 비해 자신에게는 주로
점잖은(?) 영어로 업무이야기를 하니까 이런 불쾌한 표현을 접해볼
기회가 없는게 장점이라고.

그는 평일에 밤늦게 남거나 토요일이나 공휴일에 출근해 일하는 풍토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해진 근무시간안에 집중적으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따지고보면 커피브레이크에 낭비되는 시간도 많은데 이런 자투리시간을
절약해 시테크를 이뤄야 한다는 것.

칼퇴근하면 눈총을 받고 상사의 눈치를 봐서 서서히 퇴근무드에 젖어드는
분위기는 비생산적이기 짝이 없다고도 말했다.

또 퇴근후 운동이나 취미생활을 시간이 없는게 아쉽다며 어느새 자신도
평범한 한국직장인들처럼 1주일에 한두번은 술집에 가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씨와 윤씨는 "직장내 회식이 매우 잦은 것 같다"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좋은데 술을 많이 마시며 여러 사람이 폭넓게 참여하기에는
아직 회식문화가 덜 성숙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여자들이 참여할 공간이 특히 적다"며 "외국에서는 친한
사람들끼리만 성적인 농담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공적이라고 할수 있는
직장내 회식에서 음담패설이 공공연히 이뤄져 약간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 정종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