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영화 "야생동물 보호구역"은 몇가지 점에서 그의 전작
"악어"를 연상시킨다.

2편 모두 강 (한강과 센강) 주변에 사는 인물을 다뤘다는 점, 양쪽
사회의 패배자 (또는 주변인)라는 점, 인간의 추악함을 냉정하게
묘사하지만 인간성에 대한 믿음은 버리지 않는다는 것 등.

동시에 두 작품은 크게 다르다.

"악어"는 제작비 3억5천만원의 저예산영화지만 "야생동물..."은
독립프로덕션 "아세아 네트워크" (성원그룹 계열)가 15억원을 들여 만든
대작이다.

전체를 프랑스에서 촬영했으며 리차드 보링거, 드니 라방 ("퐁뇌프의
연인들" 주연) 등 프랑스 배우와 수중촬영가 홀롱 사브와 ("그랑 블루"
촬영) 등 화려한 스텝을 기용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에펠탑과 루브르박물관을 찍지 않았다.

프랑스로케 하면 떠올리는 가장 편한 길을 피한 대목은 신선하다.

주요 인물은 그림공부하러 파리에 갔다가 현지에 눌러 앉아 부랑아처럼
사는 청해 (조재현), 북한군 출신의 도망자 홍산 (장동직), 입양아 출신의
핍쇼걸 로라 (장륜).

청해는 홍산의 약점을 잡아 곁에 두면서 이용하고 로라는 마약상인
애인 (드니 라방)을 잃은 뒤 복수에 나선다.

이 영화가 눈길을 끄는 첫 요소는 화면의 아름다움.

감정변화에 따라 흰색에서 청회색으로 달라지는 거리 보디페인팅쇼의
색채, 강변과 실내 등 배경에 따라 파랑 빨강으로 뚜렷이 변하는 색상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 영화에 너무 많은 얘기를 담으려 애썼고 그것이 작품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남북한 출신 인물의 관계, 해외입양아 문제, 마약을 둘러싼 검은 세계,
유럽의 동구이민....

모든 얘기를 한번씩 거론하지만 어느것 하나 깊이있게 말하지 못했다.

조재현과 드니 라방의 얼굴, 센 강변과 푸른 바다속은 뚜렷이 기억하게
되지만 다른 것은 흐릿하다.

제목처럼 보호구역 (파리)에 사는 야생동물 (주변부 인물들)의 모습만
생생하다.

25일 명보 허리우드극장 개봉.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