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3월 상무에서 13명을 제치고 일약 사장자리에 올랐던 이데이
노부유키 사장.

지난 60년 샐러리맨으로 입사, 35년만에 세계적인 기업의 톱자리에
올랐지만 마음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창업 50년만에 맞은 최대위기를 극복하기에 무언가 부족한 인물이
아닌가"하는 주변의 평가가 너무도 부담스러웠기때문이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이부카 마사루 상담역, "워크맨"의 모리타 아키오
명예회장, "CD"의 오가 노리오 회장 등 전임총수에 비해 형편없는 지명도가
고민스러웠던 것이다.

그는 이를 의식한듯 취임후 수업기간을 거치는 "일본식 관행"을
무시하고 취임직후부터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데이 사장이 경영자로서의 비범함을 처음으로 보인것은 취임후
4개월후인 지난 95년 9월.

전기업계는 제2의 VTR로 불리고 있는 DVD (디지털비디오디스크)의 규격을
둘러싸고 업계가 두그룹으로 갈라져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한쪽에는 도시바를 중심으로 히타치 마쓰시타전기 파이오니아 등이
뭉쳤다.

다른 한쪽에서는 소니가 CD (콤팩트디스크)를 공동개발한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손을 잡았다.

"베타방식 대 VHS방식"으로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VTR전쟁이 다시한번
일어날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 이데이 사장이 도시바의 사토 후미오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타협점을 찾아나서면서 급반전됐다.

이때부터 규격통일을 위한 양측간의 대화의 물꼬가 트이면서 한달후인
9월에 마침내 통일규격이 탄생했다.

이데이 사장은 취임후 3개월만인 95년7월 "리제너레이션
(Regeneration)"과 "디지털 드림 키즈 (Digital Dream Kids)"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후부터 소니제품은 디지털 일색으로 바뀌었다.

한차례 좌절을 맛봤던 PC사업도 다시 전개, 디지털시대를 향한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올 1월 발표된 위성디지털방송 J스카이B참가도 바로 디지털드림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데이 사장은 J스카이B의 머독 회장과 직접 전화통화, 자본참여를
실현했다.

이데이 사장이 전임총수들에 비해 무게가 덜 나간다는 주변의 평가를
불식시키고 소니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재건시키는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