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13일 사법사상 최초로 정치자금에 대해 조세포탈죄를 인정함에
따라 정치권의 정치자금 수수관행에 일대 변화가 예고된다.

재판부는 이날 현철씨가 10여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자금을 관리해 왔고
헌수표를 잘게 쪼개 사용하는 등 치밀한 자금세탁과정을 거친 점을 조세
포탈죄 성립의 근거로 제시했다.

세금포탈의 적극적인 의도가 없었더라도 현철씨가 이 같은 방법을 통해
세원추적을 곤란케 한 점만으로도 조세포탈의 고의성이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조세법상 "사기 기타 부정한 방법등을 통해 조세추징을 현저히 곤란케
하는 행위"를 처벌대상으로 하고있는 조세포탈죄를 보다 엄격히 해석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와함께 신분노출을 우려해 가차명계좌를 이용했을 뿐이라는
변호인측의 주장에 대해 "이는 일반인의 법감정과 과세관행에 비춰 용인될
수 없다"고 분명히 못박았다.

현철씨가 가차명계좌를 통해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관리해 온것은 자금흐름
의 추적을 차단하고 금품수수사실을 은닉한 결과를 낳았고 이는 납세의무를
고의적으로 회피한 행위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관례적인 떡값이나 기업활동을 하는데 최소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보험금"조로 건넨 돈에 대한 처벌조항이 새로 신설되는 효과가
발생하게 됐다.

지정기탁금형식이 아닌 사적인 친분을 이유로 건넨 활동자금은 물론 각종
문화활동, 연구지원금 등도 자진신고를 통해 증여세를 납부하지 않을 경우
처벌할 수 있게 됐다.

또 예술인에 대한 후원행위도 증여로 간주돼 세금을 내야만 사법처리를
면할 수 있게 됐다.

결국 이날 판결은 불로소득을 챙겼다면 반드시 세금을 내야 한다는 과세
원칙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또 항고/상고심에서 조세포탈죄가 확정된 경우에는 증여세도 물어야 한다.

<이심기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