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비자금문제에 대한 여야 공방전이 확대되면서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총재에게 돈을 주었다는 기업의 이름까지 거론, 그렇지 않아도
휘청거리고 있는 경제와 기업이 큰 타격을 입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휘청거리는 경제를 살릴 묘안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경제에 큰 타격을
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홍역을 치른데 이어 갖가지 정치자금수수를 둘러싼
바람직스럽지 못한 일들로 우리사회는 만신창이가 됐다.

해마다 이맘때엔 기업은 한해의 활동을 점검하고 다음해의 사업계획을
세우는 일에 몰두한다.

그러나 불황의 골이 깊은 데다 비자금정국까지 겹쳐 기업은 얼어붙어
있다.

과거처럼 기업 총수들이 검찰청을 드나들게 될지는 알수 없으나 정치가
경제를 또 망치고 있다는 불만속에 기업의욕이 꺾여있는 현실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세계적인 경제 예측기관인 와튼계량경제연구소(WEFA)가 최근 기존 OECD
24개 회원국과 아시아 12개국 등 36개국을 대상으로 정치권의 불안정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에 초점을 맞춰 실시한 "정치위험도 평가"에서 한국은
OECD 회원국중 최하위, 기업활동의욕은 36개국중 최하위를 차지했다.

기업활동 의욕이 경쟁국인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물론 경제발전과정이
우리에게 훨씬 처지는 베트남 파키스탄 필리핀에도 뒤지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정치하는데 돈이 들고, 그 돈은 기업에서 나온다는건 다 아는 일이다.

기업은 정치자금을 내고, 또 벌을 받기도 하고, 부도덕한 집단 또는
부패의 장본인으로 온갖 수모와 상처를 입는다.

과연 기업과 기업인이 그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 것인가, 정치가 기업인을
희생양으로 삼아도 되는 것인가.

이런 물음에 어떤 답변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잘못된 정치자금의 수수를 현실로 인정하자거나 시비를 가리자는
입장을 밝히기 전에 돈안다는 정치와 선거풍토를 만들 책임이 정치인에게
있다는걸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언필칭 깨끗하고 대가성없는 돈만 받는다고
주장한다.

정치인들의 주장이야 어떻든 정치자금은 비자발적으로 내는 보험금이라는게
기업뿐만 아니라 국민 일반의 인식이다.

기업이 비자발적으로 돈을 낼수밖에 없는 상황을 누가 만드는가.

더이상 정치가 경제를 뒤흔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걸 정치인들
스스로 다짐해야 옳다.

시급한 것은 정치풍토 쇄신이다.

어제 김영삼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에게는 조세포탈죄가 적용, 유죄가
됐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정치인들이 대가성없이 받는 돈이라고 주장하던
정치자금수수에 제동이 걸릴 것인지 두고볼 일이나, 정치인들 스스로
대가성없는 돈이라거나 깨끗한 돈만 받는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그런
돈 안받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경제와 기업은 정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고, 청산하고자
하는 잘못된 관행은 언제나 되살아나게 될 것이다.

정치가 더이상 경제와 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