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지 최근호는 지난 1천년동안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현대문명에
획기적인 전기를 발명한 토마스 엘바 에디슨 (1847~1931)을 선정했다.

수많은 위인전등에 등장하여 어린이들에게 발명의 꿈을 일깨워주고 있는
에디슨은 달리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특허가 1천여종이나 되어 그를 발명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의 3대 발명은 말할 것도 없이 전구 축음기 영사기이다.

현재의 영상산업 오디오산업, 특히 가정이나 모든 건물의 조명시설을
생각하면 그가 현대문명에 끼친 영향은 역사적이다.

올해는 마침 그가 탄생한지 1백50년이 되는 해이다.

얼마전 미국에서 발간된 닐 볼드윈의 "에디슨"이라는 전기는 부제를
"20세기를 발명한 사나이"라고 붙이고 있다.

적절한 표현이다.

만일 그의 발명이 없었다면 20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전연
달라졌을 것이다.

그는 전구 등 3대 발명 이외에 천연고무대체물, 콘크리트일체성형의 주택
등을 고안했다.

그의 발명에의 열정은 전세기에서 금세기에 걸쳐 등장한 중산계급의
라이프 스타일을 결정시켰다는 데에 문명사적 의미가 있다.

에디슨은 당시의 사회현상을 파악하여 이를 수용했다.

철도와 전신의 발달,도시의 형성,자동차의 대량생산등에 의해 사회가
급속히 조직화되고 사람들의 사고범위나 행동양식이 크게 변모했다.

에디슨은 어떤 것을 발명하면 변모하는 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과학자라기 보다는 기술자였으며 비즈니스맨이었다.

이런 에디슨도 가정인으로서는 최악의 상태였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몇달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아 첫아내는 신경불안증에
걸려 죽었다.

두번째 아내와도 거의 별거상태였으며 그의 아이들은 아버지를 증오하여
가출하기도 했다.

그의 위대함은 가정의 희생위에 쌓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만년에 자신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무엇이냐는 기자질문에
엉뚱하게도 "실험실"이라고 대답한 것은 의미가 깊다.

한국도 하나의 에디슨을 탄생시키려면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 시사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