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댄스"표 감동드라마 2편이 초가을 안방극장의 문을 두드린다.

96선댄스영화제 최우수관객상 수상작 "스핏파이어 그릴"과 97선댄스영화제
개막작 "브래스드 오프".

선댄스영화제는 배우겸 감독인 로버트 레드퍼드가 할리우드의 상업성에
반기를 들고 독립영화 발언의 장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84년 설립했다.

이후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등 영화사에 기록될만한 걸작을 배출하며 독립영화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스핏파이어 그릴"과 "브래스드 오프"에선 도발에 가까운 형식적 실험,
독창적인 영화문법, 좌절과 반항의 표현등 선댄스의 트레이드마크를
찾아볼 수 없다.

도리어 정통드라마의 서술구조를 고수하며 인간성회복이라는 낡은
메시지를 전한다.

요즘 선댄스 풍토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점이 "선댄스"다워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선댄스 주류의 특징이 없는 건 아니다.

두 영화 모두에서 주제를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감독의 고집, 소외된
사람들의 소박한 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의 명연기등을 발견할
수 있다.

감동을 크게 하기 위해선지 상황설정에 작위적인 부분이 많은 것도 공통점.

"스핏파이어 그릴"에는 3명의 여자가 나온다.

퍼시는 자신을 성폭행하고 아이까지 유산시킨 의붓아버지를 죽이고 감옥에
간 여자.

출소후 그녀는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조그만 마을 길리드를 찾아간다.

퍼시는 "스핏파이어 그릴"이란 식당에서 주인 한나와 그녀의 조카며느리
셀비를 만난다.

한나는 베트남전에서 아들을 잃었고 셀비는 남편의 독단과 무시때문에
잔뜩 주눅들어 산다.

영화는 이 세 여인이 마음의 벽을 허물고 사랑과 우정을 나누면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서정적인 영상으로 보여준다.

퍼시가 한나를 위해 죽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결말은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던지고 마지막 신에 아기와 함께 길리드를 찾는 클레어의 등장은 새로운
희망을 제시한다.

퍼시역의 신인 엘리슨 엘리어트의 강한 캐릭터 연기가 인상적.

"브래스드 오프"는 영국 보수당정부의 폐광정책으로 인해 삶의 기반이
무너질 위기에 빠진 탄광촌 사람들의 저항과 패배의식, 소박한 일상 그리고
희망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폐광과 맞물려 해체위기를 맞은 탄광 브라스밴드 단원들이 갈등을 겪고
화해하며 단합하는 과정이 넉넉하고 당당한 브라스선율에 실려 설득력있고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이완 맥그리거, 피트 포슬스웨이트등 이름있는 배우들이 눈에 띄지만
영화를 빛내는 연기자는 단연 밴드 지휘자 대니의 아들 필역의 스티븐
톰킨슨.

폐광이 되면서 가정과 일터 밴드를 잃고 삶의 의지까지 상실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절절하게 표현해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