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기술문명은 토끼걸음으로 달리는데 정신문명은 거북이걸음처럼
발걸음이 느리다고 이 두 문명의 간격이 현대의 위기를 구성한다"

영국의 문명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현대의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그가 말하는 현대문명의 위기는 새로운 문명의 탄생에 걸맞는 가치관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데 있다.

그것은 가치관의 상실과 혼돈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사회학자들은 대중사회화 현상이 현대문명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고도화에 따라 대량생산과 소비, 각종 기능집단의 무수한
탄생과 그 규모의 거대화, 매스컴의 발달 등과 같은 현상이 급속히
진전되면서 인간의 의식과 행동양식이 규격화 획일화된다.

사람들은 자연히 조직속의 부품과 같은 존재가 되거나 산산히 분해된
대중속의 개체가 된다.

그런 가운데 퍼스낼러티의 와해, 아노미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의
가치나 도덕기준을 잃은 혼돈상태), 소외 등과 같은 병리적인 인간적
위기상황이 출현한다.

사람들은 개성적 창조력을 상실한고 수동적 타인지향적 경향을 갖게
된다.

대중사회란 가치기준을 상실한채 혼돈속에 빠져있는 대중이 정치 경제
사회 순화의 모든 분야에 진출하여 그 동향을 좌우하는 사회상황 또는
사회형태다.

한국사회도 대중사회의 특성에 젖어버린지 오래되었다고 기존의
가치기준의 와해로 혼돈에 빠져 있는 대중이 사회를 이끌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쌍용건설이 20,30대 사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는 한국
젊은이들이 대중사회 의식의 핵에 들어와 있음을 확연히 드러내주는
일면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 준다.

예전과는 달리 한국을 빛낸 사람의 첫번째로 박찬호 선수를 꼽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과 같이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통치자나 위인을
꼽았던것이 이처럼 전도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사회의 우상이 스포츠맨이나 연예인과 같은 인기인으로 바뀌어가는
일반적 추세의 소산일까.

아니면 그동안 한국사회 각 분야에서 드러난 갖가지 부정과 비리 등
아노미에 대한 역항적 반사현상일까.

착잡한 생각이 들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