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용씨(48세).

K상사에서 명예퇴직한 그는 요즘 역술원을 찾아 다닌다.

자기와 운이 닿는 사업을 선택하기 위해서다.

잘못하면 청춘을 바친 댓가로 마련한 퇴직금을 날릴 판이니 좋은게 좋다고
역술가들이 좋다는 업종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이다.

평소 이런데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살아오다시피한 그로서는 큰
변화라서 그는 고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역술원, <><><>철학관, <><><>운명예언집 등 점술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미아리고개옆 이른바 점술타운.

입시철 결혼철 인사철도 아닌 8,9월 하반기에도 점술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만큼 답답한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경기불황과 고용불안이 확산되면서 불안해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앞날이
불안하거나 답답한 사람들은 앞날에 대한 힌트라도 얻어볼까 점집을 찾는다.

미아리고개에서 20년이상 점술집을 하고 있는 박모씨는 대기업의 부도
명예퇴직확산이라는 사회분위기가 점집을 찾는 고객들에게 그대로 반영된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점집의 주요고객인 주부들은 평상시에는 남편의 사업, 입시철에는
대입문제가 점집을 찾는 주요관심사였다는 것.

그러나 최근에는 남편이 명예퇴직을 당하지는 않을지 혹은 그럴 경우 무얼
하는 것이 좋겠느냐를 묻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이와 관련, 점술집의 주요고객이 중년의 주부에서 회사원 등으로 다양화된
것도 최근 나타난 변화이다.

박씨는 대기업의 인사철이면 자신의 거취가 어떻게 될지를 물어보러 오는
회사간부들이 하루평균 서너명씩 찾아왔다고 밝힌다.

최근에는 역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지 아니면 지방근무 등 다른 부서로
옮겨야 할지를 물어오는 회사원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대기업들의 신입사원 채용에 앞서 어떤 그룹이나 업종을 선택해야
좋을지 물어노는 학부형들도 많다.

단 궁합을 잘 맞추는 것으로 알려진 신촌의 한 역술가는 최근 이 점집을
찾는 젊은 여성들이 빼놓지 않고 물어보는 것가운데 하나가 신랑감의 직장
문제로 평생 어려움은 없느냐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버젓한 대기업을 다니는 신랑감을 둔 여성들도 예외가 없다는 것.

그만큼 대기업 회사원이라도 불안하다는 심리가 확산돼서인 것 같다며
나름대로의 분석도 곁들인다.

최근 한두달새 일어난 괌에서의 KAL기 추락사고, 캄보디아의 베트남기
추락사고, 12월중 예정된 대통령 선거 등 복합적 요인으로 점술가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예측가능성이 적은 사회, 불안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합리적인 것보다는
인간의 논리로 풀기 힘든 신비한 힘에 기대려한다.

경제침체와 정치적 혼란, 대형사고가 빚어낸 과학.정보시대의 일그러진
사회상이다.

<김정아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