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파일] (신세대 창업만세) 최대통 <대동인터내셔날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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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서바이벌 게임은 짧은 시간에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는
매력에 힘입어 젊은이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주변에서 실내 서바이벌 게임장을 단 한곳도 찾아볼 수
없다.
지난 95년말부터 상업지구내 위락시설에만 실내 서바이벌 게임장을 설치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가 시행령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이 조치로 성업중이던 전국의 1백50개 실내 서바이벌 게임장은 모두 문을
닫아야 했다.
이와 함께 대여섯개에 이르던 실내 서바이벌 게임 장비 생산업체도 하나둘
업종을 바꿔 지금은 한두곳만이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대동인터내셔날의 최대통(34)사장은 제 2의 도약을 준비하며 실내 서바이벌
게임 장비 생산을 고집하고 있는 사람중 한명이다.
국내시장이 사실상 소멸했지만 수출로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게 최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지난 93년부터 실내 서바이벌 게임 장비에 손을 대기 시작,한때
국내시장의 60%를 거머쥐기도 했다.
지난 94년에는 연 매출이 15억원, 95년엔 20억원에 이르렀다.
또 서바이벌 게임의 본고장인 미국에도 자사 장비를 쓰는 대형 업소가
5곳이나 문을 열면서 성공이 손에 잡힐 듯했다.
그러나 실내 서바이벌 게임을 사실상 금지하는 복지부의 조치로
내수의존도가 높았던 그의 사업은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그는 획기적인 신제품을 개발,선발 외국업체들의 아성을 뚫고
세계시장에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후 지금까지 2년가까이 신제품 개발에 매달렸다.
이렇다할 매출이 없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쏟아부은 자금만 약 10억원.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무역대행과 인테리어업을 병행하면서 버티고
있다.
그는 "그래도 오는 9월 중순이면 그동안 공들인 신제품이 출시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고 말한다.
신제품은 기존 제품에는 없는 방탄조끼 기능과 유탄발사기 기능을 갖췄다.
또 음성안내 등을 삽입,게임을 한결 박진감넘치게 만들었다.
그는 자사 제품을 쓰는 미국내 게임장을 통해 이 제품을 선보인뒤
협력파트너를 물색, 세계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라며 자신만만해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가 자신감을 갖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직 젊은 그이지만 영업만큼은 남다른 노하우를 갖고 있어서이다.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와 무역대학원을 졸업한 최사장은 그의 전공과는
얼핏 무관해보이는 길을 걸어왔다.
지난 87년 어학테이프 업체 영업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으며
88년부터 2년남짓동안은 대우자동차 계열인 우리자동차판매의 영업소장으로
일했다.
그후 무역업에도 손을 댔지만 관리경험 부족으로 쓴잔을 마셨다.
이런 경험을 밑천삼아 영업통이 된 그가 선배가 경영하던 대동인터내셔날에
들어온 것은 지난 93년.
그는 실내 서바이벌 게임 장비 사업을 도맡아 기획했고 그뒤 회사를
인수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는 "창업을 하려면 우선 잘 아는 분야에서 아이템을 찾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욕못지
않게 끈기도 필요하다"고 귀띔한다.
<김용준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6일자).
매력에 힘입어 젊은이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주변에서 실내 서바이벌 게임장을 단 한곳도 찾아볼 수
없다.
지난 95년말부터 상업지구내 위락시설에만 실내 서바이벌 게임장을 설치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가 시행령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이 조치로 성업중이던 전국의 1백50개 실내 서바이벌 게임장은 모두 문을
닫아야 했다.
이와 함께 대여섯개에 이르던 실내 서바이벌 게임 장비 생산업체도 하나둘
업종을 바꿔 지금은 한두곳만이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대동인터내셔날의 최대통(34)사장은 제 2의 도약을 준비하며 실내 서바이벌
게임 장비 생산을 고집하고 있는 사람중 한명이다.
국내시장이 사실상 소멸했지만 수출로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게 최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지난 93년부터 실내 서바이벌 게임 장비에 손을 대기 시작,한때
국내시장의 60%를 거머쥐기도 했다.
지난 94년에는 연 매출이 15억원, 95년엔 20억원에 이르렀다.
또 서바이벌 게임의 본고장인 미국에도 자사 장비를 쓰는 대형 업소가
5곳이나 문을 열면서 성공이 손에 잡힐 듯했다.
그러나 실내 서바이벌 게임을 사실상 금지하는 복지부의 조치로
내수의존도가 높았던 그의 사업은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그는 획기적인 신제품을 개발,선발 외국업체들의 아성을 뚫고
세계시장에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후 지금까지 2년가까이 신제품 개발에 매달렸다.
이렇다할 매출이 없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쏟아부은 자금만 약 10억원.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무역대행과 인테리어업을 병행하면서 버티고
있다.
그는 "그래도 오는 9월 중순이면 그동안 공들인 신제품이 출시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고 말한다.
신제품은 기존 제품에는 없는 방탄조끼 기능과 유탄발사기 기능을 갖췄다.
또 음성안내 등을 삽입,게임을 한결 박진감넘치게 만들었다.
그는 자사 제품을 쓰는 미국내 게임장을 통해 이 제품을 선보인뒤
협력파트너를 물색, 세계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라며 자신만만해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가 자신감을 갖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직 젊은 그이지만 영업만큼은 남다른 노하우를 갖고 있어서이다.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와 무역대학원을 졸업한 최사장은 그의 전공과는
얼핏 무관해보이는 길을 걸어왔다.
지난 87년 어학테이프 업체 영업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으며
88년부터 2년남짓동안은 대우자동차 계열인 우리자동차판매의 영업소장으로
일했다.
그후 무역업에도 손을 댔지만 관리경험 부족으로 쓴잔을 마셨다.
이런 경험을 밑천삼아 영업통이 된 그가 선배가 경영하던 대동인터내셔날에
들어온 것은 지난 93년.
그는 실내 서바이벌 게임 장비 사업을 도맡아 기획했고 그뒤 회사를
인수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는 "창업을 하려면 우선 잘 아는 분야에서 아이템을 찾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욕못지
않게 끈기도 필요하다"고 귀띔한다.
<김용준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