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트마 간디에겐 특별한 소망이 있었다.

그의 꿈은 "모든 인도인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내는 것" (Wipe every
tear of every eye)이었다.

세계인들의 축복속에 인도인들은 지난주 독립 50주년을 자축했다.

이 자리에서 인도인들은 간디가 말한 대부분의 눈물을 이제 걷어냈다고
선언했다.

인도인들은 먹는 일, 자녀 교육, 세계 어느 누구도 넘볼수 없는 첨단
기술력, 그리고 인류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뿌듯해 했다.

K R 나라나얀이라는 천민출신의 대통령을 맞아들인 것 또한 인도인들
에게는 큰 자랑거리였다.

이는 철저한 신분계급사회로부터의 점진적 탈피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외부로부터의 독립에 이어 내부적 질곡으로부터의 해방을 찾는 의미있는
독립기념일이었다.

천민계급의 숨겨진 눈물까지 닦아낸 것이다.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에게도 눈물이 있었다.

한국인의 눈물은 어쩌면 인도인들의 것보다 더 처절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가 인도인들보다는 짧은 시간안에 이들
눈물을 걷어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우리에겐 과거에 흘리던 눈물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다.

잠시 눈물을 잊고 사는 사이 "또다시 눈물을 흘려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우리에게 엄습해오고 있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밝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땅에 떨어진 윤리도덕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 경제가 거덜난지는 이미
오래다.

쟁쟁한 이름의 대기업들이 자고깨기 무섭게 하나 둘씩 무너져가고 있다.

"이번엔 또 어디냐"를 되풀이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술 더떠 돈 버는 사람은 없는데 모두들 쓰기에 바쁘다.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식이다.

국내 기업들에 "제발 우리 돈 좀 써 주세요"를 외고 다니던 외국인들도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동남아국가들의 통화위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70년대식 외환위기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제밥찾기에 혈안이 돼있다.

후미진 곳의 소리없는 눈물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비관만 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반병짜리 맥주를 놓고도 사람들에 따라 반응이 다를수 있다.

"벌써 반병이나 비웠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직도 반병이나
남았구나"하고 반응하는 사람도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가 크게 발전할수 있었던 것은 기업가들의 진취적
사고와 공격적인 투자위험수용 (risktaking) 때문이었다는 점은 부인할수
없다.

기업인들의 과감한 투자와 미래 불확실성 (uncertainty)에 대한 두려움
없는 접근이야말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업가들이 아무 속셈없이 무작정 밀어 붙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투자가 실패로 이어질때 이로 인해 빚어지는 모든 시련은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위험수용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수 없을 정도로
공격적일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막강한 정부"가 뒤를 봐주고 있다는 의식이 이들을 과감한
투자가로 만들었을수 있다.

실제로 과거 정부는 금융 세제 보조금 등을 통해 기업가들이 실패할수
있는 리스크를 최대한 줄여 준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고 보는 것은 순진한 시각이다.

경제인들에게 또하나의 "믿는 구석"이 돼준 것은 바로 부동산이었다.

본사업에서 실패하더라도 공장짓기 위해 확보한 부동산만 팔면
투자원금을 모두 다 뽑고도 남길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은 이들을
무모하리만치 과감한 투자가로 만들었다.

한보 진로 대농등 부동산에 최후의 배수진을 치고 있던 기업들이 무너져
내린 것이 그 좋은 예이다.

한마디로 부동산신화가 무너지며 이와함께 투자 패러다임도 180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땅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한과 애환이 짙게 배어 있는 땅은 아직도 모순덩어리로 남아있다.

우리 경제 사회의 합리적 사고의 틀을 왜곡시켜 온 장본인이자 온갖
부정과 사회악의 근원이었다.

불행중 다행이게도 대기업의 부도 사태를 통해 우리사회는 땅에 대한
인식, 그리고 기업경영개념상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위상 등을 새롭게
정립해가고 있다.

이런 새로운 접근이야말로 한국인들이 "절망중에 찾은 가장 큰 교훈이자
희망"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어두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분위기는 여러 부문에서 감지되고 있다.

노사갈등의 안정과 현안해결에 대한 노사모두의 전향적 자세, 좀더
일하려는 움직임, 에너지절약, 무분별한 해외여행감소 등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는 실날같은 징후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의 여러가지 복합적 절망감은 우리 기업인들에게 "빚 무서운 줄"을
깨닫게 했으며 "돈 되는 장사가 아니면 절대 손대지 않는다"는 교훈과
"부동산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런 인식과 공감대야 말로 우리경제를 다시 한번 도약시킬수 있는 가장
큰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