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가만 놔뒀으면 좋겠어요. 독자하고 얘기하고 싶어요"

만화가 원수연.

그녀의 첫마디는 이렇게 시작됐다.

만화판의 들썩임에 그녀도 자유롭지 못했는지 이틀밤을 꼬박 세우고 오후
10시가 지나서 어렵게 만나 던진 첫마디였다.

결혼은 아직 안했다.

음악에 관심많고 기성가치에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는 표정.

굳이 대학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생활하던 그녀.

새로운 직업을 찾아 방황하던 때 한권의 만화가 그녀를 만화가의 길로
이끌었다.

그녀의 대표작은 "풀하우스"와 "엘리오와 이베트".

풀하우스는 지금 홍콩과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그녀도 톱의 자리에 와 있고 함께하는 문하생도 꽤 된다.

"만화가는 너무 어려운 직업이지요.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온갖
상상을 하고 있으면 마감시간이 다가와요. 이틀도 좋고 사흘도 좋고 그냥
밤을 지세우지요"

그래서 더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덧붙인다.

한달 평균 수입은 약 5백만원.

그러나 식구가 늘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일반직장인들 수준으로 파악
하지만 그녀에게는 퇴직금과 보너스가 없다.

만화잡지사와 작업실이 전부였던 그녀는 요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만화를 청소년범죄의 매개체인양 오도하면서 만화사냥을 시작한 제도와
편견 그리고 일부 만화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한 어른들과의 투쟁을.

"나의 오감을 열어놓고 그 감정을 솔직하게 독자와 나누는게 이 직업이에요"

사회자체가 음란함을 조장함에도 마치 만화가 그 온상인양 떠들면서 한편
으로는 만화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나서는 일부의 이중적 태도가 그녀를
분노케 했던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를 만났다.

만화 그리는 것도 벅찬데 이제는 연일 데모하고 팬 사인회하며 언론과의
인터뷰까지.

그러나 이제 사회의 한복판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만화가로서 가장 힘들때는 오감이 열리지 않을 때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독자들과 대화할 소재를 생각한다.

그러나 기쁠때도 많다.

부모님의 눈을 피해 만화를 보던 한 어린학생이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이
돼서 "그때 만화 너무 재미있게 봤어요. 이제는 부모님들께도 권하고 있어요.
선생님 고마워요"라고 말할때 그녀에게 새로운 희망의 문이 열린다.

며칠전 그녀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양심수를 생각하며 하루 감옥살이.

"지금은 잘 모르지만 나중에 많은 생각을 할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감옥살이에 대해 덧붙인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희망에 들떠 있다.

오는 21일 "만화인의 밤"이 열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화의 날" 선포식을
한다.

만화가 자유롭게 되길 고대하면서..

밤이 깊어 새벽 1시를 가리킨다.

상상하고 창작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성처럼 그녀도 밤이 좋다.

지친기색은 밤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밤은 자유를 준다.

나를 방해하는 사람이 없고 내가 방해할 사람도 없다.

그녀에게 만화는 끝없는 사슬속에 있는 한켠의 자유공간이다.

세상과 나처럼.

< 김용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