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30대를 지내고 40대에 접어들면서 나는 주위의
권유에 의해 골프를 배웠다.

골프의 즐거움이야 더 말할게 없지만 골프가 아무때나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운동도 아니고 만날 수 있는 친구들도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50을 바라보며 건강을 걱정할 나이가 되자 등산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두번 따라나서보니 그 맛과 즐거움이 여간 아니었다.

등산이란 아무때고 부킹없이 오를 수 있고 혼자도 좋고 친구들과 어울려
오르면 더더욱 재미가 있다.

운동량도 능력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니 내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산행의 맛을 알게될 즈음 고등학교 동문들(서울사대부고 16회)이 졸업
30주년 기념등반을 시작으로 선구회를 조직하여 매월 한번씩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모임의 이름이 언덕을 오른다는 겸손한 표현이지만 서울 근교의 청계산
남한산 북한산을 비롯하여 지리산 종주까지 해낸 맹렬 산행 동문들의
모임이다.

적게는 10여명에서 많게는 50여명이 참여하는 산행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요인은 창립이래 장기집권중인 위광우 회장 (서울시 공무원)의 탁월한
지도력과 함께 남녀공학 출신이었다는 남다른 이점도 크다고 생각된다.

아직도 고등학교시절의 호칭을 즐기는 여자동문들이 매번 반이상을
차지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원래 천하재사들이 다 모였다는 천하부고의 원판들인지라 우리들의
산행은 언제나 흘리는 땀보다 웃음이 더 많다.

고금의 철학에서 오늘의 음양잡사까지 자유자재로 비벼주는 최현근
(사업), 웃지않고 웃기는 프로급 등반객 김윤종 (사업), 미모에 안 어울리게
걸쭉한 언어를 통해 남자들을 놀라게 하는 김풍자, 촌철살인의 한마디로
좌중을 휘어잡는 정숙자 박미자, 등산보다 사진찍기에 더 열성인 조병후
(세무공무원), 뒤처진 사람들을 지켜주는 김성광 (조양물산 부사장),
세월을 거꾸로 먹는 만년 이팔청춘 정영경, 그외에 누구 하나도 빠지면
산이 서러워하는 김용호 이미화 김영길 진영애 주현길 방유정 남정자 등도
보석같은 멤버들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