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요즈음 상장회사들중 투자자들과의 신뢰구축을 강조하는 기업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투자자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하는 기업은 앞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소극적으로 기업을 알리기보다는 적극적인 IR(Investor Relations.
투자자관리)활동을 통해 정당한 평가를 받야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올해들어 7월까지 집계된 상장회사의 기업설명회 건수는 모두 35건.

두산그룹 계열사와 하나은행 LG화학 한국전력 등이 자체주관방식으로
21건의 기업설명회를 가졌으며 LG정보통신 미래산업 현대전자산업 등은
외부주관방식으로 14차례의 기업설명회를 가졌다.

두산그룹의 경우 지난 5월말 리스트럭처링과 그룹경영전략, OB맥주와
두산음료 합병 등을 IR차원에서 발표, 투자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룹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기업설명회를 계기로 사라졌고 관련주가가
올랐다.

하나은행 에스원 국민은행 등은 해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IR행사를 가졌다.

국내에서 IR활동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지난 94년부터.

증권거래소와 상장회사협의회 등에서 IR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후 94년
33개 상장회사가 IR활동을 벌였다.

95년에는 34개사, 96년 52개사로 IR활동을 하는 기업은 계속 늘어났다.

지난달 태일정밀이 증권거래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금악화설을
적극적으로 부인,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고 주가안정을 되찾은 것도 IR활동의
사례로 꼽히고 있다.

IR활동의 중요성이 최근 더욱 강조되는 까닭은 증시주변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주주의 경영권 보호를 우선시했던 증권관련법규가 개정되면서 기존
대주주들은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의 위험에 노출됐다.

기업경영을 잘하든 못하든 경영권을 안전하게 유지했던 예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50%이상의 절대지분을 확보하지 않는 한 언제든지 기업사냥꾼의 먹이가
될 수도 있다.

주식을 갖고있는 다른 주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것이 경영권안정에도
필수적인 일이 됐다.

위임장 대결이 벌어질 경우 소액주주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대주주는
경영권을 내놓을수 밖에 없다.

주주들의 의식도 바뀌고 있다.

기업경영을 잘못해 주가가 급락했을때 주주들은 더이상 가만히 있지
않는다.

지난번 제일은행의 부실여신파문이 발생했을때에도, 삼성전자가
사모전환사채를 발행했을때에도 기존주주들은 크게 반발했다.

기업경영을 잘못하거나 대주주가 부당하게 이득을 챙길때 소액주주들은
참지 않는다.

최근에는 투자자들로부터 사실상 내락을 받지 못하면 신규사업조차
제대로 할수 없는 상황마저 생기고 있다.

포항제철이 한보철강을 인수하겠다고 밝히자마자 포철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수익성이 없는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투자자들의
의사표시중 하나였다.

"한보철강을 인수하는 순간 포철주식을 모두 팔아치우겠다는 투자자들이
많다"(한국투자신탁 박종규 주식운용역)고 한다.

예전에는 투자자들이 "유상증자"라면 무조건 호재로 받아들였다.

유상증자로 생긴 자금을 어디에 투입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그러나 잘못된 신규사업이 회사전체를 뒤흔든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닫게
됐다.

부도가 나거나 부도유예협약 대상으로 지정된 대기업들은 공통적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왔다는게 최근 밝혀졌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시장이 점차 국제화되고 있는 추세도 무시할 수 없다.

외국인투자한도가 23%로 확대되면서 증시에서 차지하는 외국인 비중은
더욱 커지고있다.

외국인투자자들은 솔직하고 적극적인 IR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외국인들은 기업이 수익목표를 설득력있게 제시하지 않으면 금방
외면한다.

대우증권 강창희 상무는 "이자율에도 못미치는 이익을 내는 장사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기업은 더이상 살아남을수 없게됐다"며 "이제는
기업들이 진정으로 투자자를 생각해야 할때"라고 강조한다.

매출액 확대라는 허울보다는 자기자본수익률 등 투자자들에게 의미있는
지표가 더욱 중시돼야 한다는 얘기다.

투자자들을 중시하는 기업경영과 이를 토대로 투자자들이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IR활동은 이제 필수적인 기업활동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투자자들을 "싼 자금줄"정도로 인식하는 기업경영으로는 치열한
국제경쟁시대에서 살아남을수 없다는게 최근의 교훈이기도 하다.

< 현승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