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지진"의 진앙지인 광명시 소하동. 기아공장에서 가까운 하안동
아파트형 공장에 있는 테스타엔지니어링의 임병훈사장은 걱정이 태산이다.

납품대금 몇천만원을 당장 못받게 돼서가 아니다.

자칫하면 초정밀 쉼(SHIM)측정기의 인도네시아 수출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어서다.

이 회사는 인도네시아 기아 합작사에 이 제품을 수출키로 하고 개발을
추진해 왔다.

안정적인 납품처가 정해진데다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 이 프로젝트에
공을 들여 왔다.

물론 막대한 돈도 투자했다.

그러나 "기아의 좌초"로 워셔를 분리하는 이 첨단제품은 빛도 못보고
창고에 묻혀야할 판이다.

"거래선을 돌리거나 하면 판로는 생기겠지요. 하지만 1.2차 협력업체가
무너지고 재기할때까지 세계시장이 지금처럼 남아 있을까요"

임사장은 바로 이게 안타깝다.

문제는 이런 업체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기아파문은 안산 안양 인천으로 번지고 있다.

안산시 고잔동 기아협력회관 2층에는 D정공, T진흥등 하청업체 사장
30여명이 모여 대책을 자주 논의한다.

수억-수십억원의 기아 어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대화는 원점에서만 맴돈다.

협력을 강화하고 정보교류를 강화하자는게 정해진 결론.

안양의 S전기 사정은 더욱 절박한다.

이 모사장은 회사에 있으면서도 외출중이라며 면회를 거절하고 있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할인한 어음을 돈을 들고와 찾아 가라는 연락이 잦아 신경이 곤두서 있기
때문이다.

"긴급자금 5천억원을 푼다지만 5천개가 넘는 협력업체 누구 코에 붙입니까.
중요한건 거래를 정상화 시키는 특단의 조치예요"

기아에 5억원이 묶여 지난달 종업원 월급마저 주지 못한 이사장은 얼굴을
붉히면서 목청을 높였다.

인천 남동공단 입주업체들도 기아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케이블을 납품해온 D시스템은 기아에서 18억원을 받아야 하지만 기약이
없다.

그만큼 자금사정이 악화돼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처지다.

모이사는 "납품을 계속하고 있으나 결제가 잘 안돼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하소연 했다.

기아사태로 위기에 직면한 업체는 반월, 시화의 80여개를 비롯, 남동공단의
30개, 광명 지역의 15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통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지역과 재하청 업체들가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수도권에서
수천개에 달한다는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남동 자동차부품조합의 김경진상무는 "기아 협력사들이 대부분 다른
자동차 업체와도 거래를 하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며 "정부의
획기적인 대책만이 이번 위기를 극복할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아사태는 슈퍼나 구명가게등 생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소하동 기아공장 인근에서 슈퍼를 하는 박상주(48)씨는 "얼마전까지 해도
회식용 술과 안주등이 잘 나가 그런대로 수지를 맞출수 있었으나 지금은
손님이 뚝 떨어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몇몇 상점주인들은 이제 가게를 다른 곳으로 옮길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다른 유통업계 쪽에도 기아의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김희영기자>

*** 한마디 ***

김재업 < 광명시 기업인협의회 회장 >

협력업체들은 기아가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바랄 뿐이다.

그 길외에 중소업체들이 살수 있는 길은 없다.

광명지역에 있는 기아 협력업체 수는 서울차량공업등 15개를 넘어 기아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실정이다.

기아의 회생여부에 중소업체의 생존은 물론 지역경제의 사활이 달려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대대적인 금융지원으로 지역의 자금난을 풀어주는게
시급하다.

업체대표들과 함께 기아자동차를 방문해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고
기아의 회생을 위해 할수있는 일이 있다면 지역주민들과 힘을 모아 모든
노력을 쏟을 계획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