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계를 중심으로 한 신한국당내 최대 모임인 정치발전협의회가 2일 전격적
으로 사실상 활동중단을 선언하고 나와 여권의 차기 대통령 경선후보 구도는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정발협은 이날 오전 상임집행위및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경선과정에서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발협측은 이날로 예정됐던 지지후보 선정을 위한 "경선주자
토론회"도 취소했다.

신한국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정발협이 전격적인 결정을 내린 배경과
앞으로의 청와대 움직임 특히 김영삼 대통령의 경선관리자로서의 역할에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다.

현재까지의 혼미한 판세를 감안할때 정발협측이 일부의 이탈을 감수하면서
지지후보를 결정하고 총력전을 펼 경우 경선판세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제 경선구도는 새로운 출발선으로 되돌아 갔기 때문이다.

각 후보 진영은 경선전략을 대폭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가운데 일부진영은 정발협의 결정을 놓고 아전인수식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이 전개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회창 전대표측은 현재의 세분포상 1차투표에서 최다득표는 확실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과반수 확보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는 정발협측이 말그대로 중립을 지켜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발협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던 이수성 고문측은 "정발협이 공개적으로
지지후보를 결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는데 이제는 다수의 위원장들이
부담없이 우리쪽에 가담할수 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관계자들은 그러나 정발협 소속 위원장들이 각 후보들과의 개인적
연분이나 지역연고 등에 따라 뿔뿔이 흩어지고 그러한 결과는 국민적 지지도
가 그리 높지 않은 이고문에게 치명타를 줄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발협이 특정후보를 지지.공표하는데 다소 부정적이었던 박찬종 고문과
이인제 경기지사 캠프는 정발협의 결정을 환영하면서 한편으로는 여권핵심부
의 의중이 어디 있을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은 "반이회창 입장인 김대통령이 정발협과 나라회 등의 해체를
유도한뒤 국민적 지지도가 높은 박고문이나 이지사를 바람직한 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며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정발협의 선택 순위에서 다소 밀려있는 것으로 점쳐졌던 이한동 고문이나
김덕룡 최병렬 의원 등은 정발협측의 결정에 개의치 않고 득표활동을 전개
한다는 입장이다.

반이 연대를 주도하던 정발협측이 이날 갑자기 해체나 다름없는 결단을
내린데는 외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일단 김대통령의 뜻이 각 주자진영이나 정발협 나라회 등에
상당히 강하게 전달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들에게 "경선의 공정성 시비가 일수 있는 일체의 공개적
행동은 중단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정발협의 중립선언 움직임이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김대통령의 해외
순방 막바지 쯤이었다.

김대통령이 귀국후 경선정국에서 중대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았고 이는 김광일 정치특보의 임명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어 정발협에 참여하고 있던 이만섭 대표가 기용됨으로써 여권핵심부의
의중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발협의 이날 결정이 어느 주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 또 여권핵심부가
경선구도와 관련해 모종의 카드를 비장하고 있는지 여부는 좀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이라는 게 현재로서는 대체적인 의견이다.

또한 정발협 등의 움직임은 겉으로는 불공정 경선시비의 단초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김대통령의 의중이 전달된 결과라는데도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발협의 전격 선회가 김대통령의 중립을 가시화하려는 조치의
일환으로만 단순화시키는 것은 다소 "순진한" 분석이라는 지적이다.

< 박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