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7월 불볕더위속에 공군항공병학교 연병장에서 땀범벅 흙범벅으로
뒹굴던 20대의 발랄한 청년들로 만나서 어언 42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
버렸다.
사회에는 여러 모임이 많지만 군에서의 인연을 계기로 반세기 교우를
유지해왔다는 사실에 회원 모두 자긍심을 갖고 있다.
군에서의 주특기를 배경으로 삼아 많은 동기생들이 사회에 진출한
후에도 그것을 사업으로 연결했다는 사실도 공통점이다.
6.25가 막 끝난 당시 대한민국 공군은 미군이 첨단장비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한국공군으로 그 장비를 이관해야 했었는데 우리
동기생들이 미군장비를 처음 인수했다는데도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동기생들은 항공학교를 마치고 난뒤에도 대부분 통신학교에서도 같이
있었고 항공정보대 창설멤버였기 때문에 그일을 해낼수 있었던 것이다.
강릉레이다기지였을 것이다.
당시는 처음 접하는 첨단장비였으므로 우리들은 자부심반 호기심반으로
레이다를 감시하고 운용했던 것이다.
우리는 전역후 통신설비를 비롯해 각자 맡은 분야에서 30,40대를 열심히
살았고,50대에 들어 하나 둘 모이다보니 이 동기회를 시작한 지도 어언
15년이 됐다.
15년동안 매월 15일 오후6시면 어김없이 서울 을지로3가의 길다방에서
만나고 있다.
물론 지금도 모이기만 하면 "야,자"하며 20대의 청년시절로 되돌아가
생기가 돋곤 한다.
봄 가을 1년에 두번씩은 부부동반으로 전국 명승지를 찾아 가족간
유대도 돈독히 하고 있다.
서로 이해관계나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고 만나는 모임이라 더욱
좋다.
요즈음은 손자손녀의 재롱이 화제가 되는 일이 많다.
그만큼 늙었다는 것이고,늙어가면서 화제도 변한다는 사실을 새감
느낀다.
우리 모임의 회원으로는 전 안기부조정관이었던 조택래회장을 비롯
전회장이었던 필자, 그리고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이만옥 강태원 남수남
민병화 전춘원 최창식 김광식 오재봉 지병용 이갑술씨 등을 들수 있다.
이제 70을 바라보는 나이들.적십자혈액원 혈액부장이었던 정일영회원을
먼저 하늘나라에 보냈다.
앞으로 몇년을 더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으나 우리의 우정은 죽는날까지
변함없이 계속될 것이다.
이 글을 보고 공군42기 동기생들이 새로 모임에 들어오면 언제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도 덧붙이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