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를 연구하는 학문만큼 많은 것도 드물 것 같다.

학문적 영역으로 자리잡은 것만 해도 범죄사회학 범죄생물학 범죄심리학
범죄인류학 범죄정신병리학 범죄수사학등 다양하다.

사회구조의 변화와 그에 따른 범죄유형의 변화등으로 인해 더 많은
학문분야가 나오리라는 것도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범죄의 원인이나 결과들이 범죄자의 개인적 성격이나 심리상태뿐만
아니라 사회구조및 제도등의 상호작용에 의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때문에
그 연구대상도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중에서 정신병리학적 입장은 범죄적 성향이 모든 인간에게 내재해
있고 따라서 범죄자의 어떤 특정한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범죄란 그 사람의 성향과 그 당시의 환경,이와 관련되는 충동및 정신적
반항심의 종합적 결과라는 분석이다.

사회적 환경변화가 범죄의 주요 원인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우리 사회에서도 대형 범죄사건이 터질때마다 여러가지 진단과 처방이
제시돼왔다.

잘못된 학교교육, 황폐된 윤리.도덕관, 미흡한 가정교육, 비정한
경쟁사회, 한탕주의, 황금만능주의, 인간소외, 양심의 결핍, 부정부패,
쾌락주의등 수많은 수사들이 동원돼 갖가지 사회병리현상이 조명되곤 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병리현상이 치유되기는 커녕 악화되는 양상을 보여줘
우리를 슬프게 한다.

최근 일어난 일식당주인 납치 살해사건도 그중의 하나다.

이번 사건은 지난 94년 추석무렵에 있었던 속칭 지존파사건이나 지난해
10월의 막가파 살인사건을 그대로 닮았다.

외제차를 타고다니는 돈많은 사람들을 시기하고 유흥비마련을 위해
살인이라는 극악한 수단을 주저없이 선택하는 젊은이들.

과연 그들의 정신병리학적 진단은 어떤 것일까.

우리 사회의 범죄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범죄자 개인의 정신상태등도
중요하겠지만 사회병리현상도 짚어보아야 할 과제다.

일반 서민들의 눈에 거슬리는 일부 부유층의 과소비, 청소년 폭력물
방영등 영상매체의 무절제, 분에 넘치는 정치쇼...

이런 것들이 범죄의 자극제는 아닌지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