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뛰어난 최고경영자(CEO)에 의해 기업이 1백80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 ''경기침체로 경영조건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란 식의 변명은 필요없다.

직원을 잘 부리는 것도, 침체라는 경영환경에 대응해 나가는 것도 모두
CEO가 책임져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호(6월23일) 포천지가 소개하는 CEO들은 미국식 자본주의
가 낳은 ''영웅''들이다.

미국의 주요기업중 최근 10년동안 최고수준의 배당률을 낸 기업의 총수들의
경영행적을 살펴본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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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의 신발업계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품질이 좋아져 몇년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는 신발.

수요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나이키의 필 나이트 회장은 이 난국을 ''프리미엄'' 전략으로 돌파했다.

조깅인구가 늘어나고 있는데 착안, ''러닝화=나이키''라는 등식을 꾸며냈다.

80년대부터 나이키는 신발회사가 아니었다.

나이트 회장이 회사를 마케팅 기관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생산은 한국과 동남아의 개도국에 일임하고 파격적인 광고를 흘려 보냈다.

마이클 조던의 환상적인 덩크슛에 오버랩되는 나이키마크, 최근에는
타이거 우즈를 잡았다.

이는 제품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이다.

나이트 회장은 최근 세번째 변신을 꾀하고 있다.

단순한 신발제조업체가 아닌 다양한 스포츠행사를 주관하는 이벤트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포츠와 브랜드를 함께 증진시킨다. 스포츠가 증진되면 그 이벤트
행사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 이는 대단한 시너지일 수밖에 없다"

나이트 회장은 ''숲이 우거져야 벨 나무가 있음''을 아는 전략적인 나무꾼
이다.

그리고 나이키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86년이후 연평균 47%의 투자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세계오토바이시장을 장악한 것은 혼다 야마하 가와사키 같은 일본제.

대도시 밤거리를 굉음으로 질주하는 폭주족들의 ''살인무기''가 대개
가와사키 혼다 등이다.

그러나 그것은 수적인 장악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할리 데이비슨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할리 데이비슨은 곧잘 할리우드영화의 터프가이들이 애용하는 것으로
나오는 오토바이.

일본제들이 대개 허리를 구부리고 타는데 반해 할리는 핸들이 높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달려간다.

리처드 티어링크가 할리 데이비슨의 회장자리에 오른 89년, 그는 비즈니스
역사에서 가장 많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유명브랜드 하나를 물려받은
셈이었다.

할리는 여전히 미국의 정통오토바이마니아들에게 자유의 상징일 수 있었다.

그러나 할리는 그같은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판매로 연결하지 못했다.

티어링크 회장은 5천명이 넘는 사내외 사람들과 토론에 나섰다.

특히 고객들과의 대화는 그가 앞으로의 전략을 찾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했다.

고객들은 단순히 오토바이를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기분을 구입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티어링크는 "할리가 미국인들이 가치로 여기는 자유와 독립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

이후 마케팅 활동은 상징화에 맞춰졌다.

오토바이형태가 복고풍으로 전환됐다.

일상생활용품시장에서는 누가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냈을까.

프록터&갬블(P&G) 크로거 등 전통적인 사업자들도 명성에 걸맞는 성과를
냈지만 진정 혁명적인 변화를 창조한 것은 보스턴마켓 스타벅스커피
트레이더조스 등이었다.

전통적 사업자들은 기껏해야 공급라인(서플라이체인)을 합리화하고
자질구레한 제품라인을 확장하는데 힘썼지만 신규 진입자들은 전혀 새로운
제품카테고리를 보이고 소매점의 개념을 변화시켰다.

아주 다양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슈퍼마켓에서 음료수 마시듯 만든
스타벅스가 그 예다.

자동차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GM 포드 닛산 크라이슬러 등 전통적인 사업자나 그 딜러들보다는 카맥스
오토바이텔 오토내이션USA 등이 자동차의 딜러체계와 유통망을 다시
태어나게 했다.

마치 맥도널드 햄버거처럼 국민적 브랜드의 자동차딜러망을 만들겠다는
오토내이션USA의 포부에 전통적 사업자들은 최고수익률 자리를 내줘야 했다.

86년부터 10년동안 연평균 35%이상의 배당률을 안겨준 기업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업계를 창조하거나 기존 업계의 낡은 질서를 철저하게
뒤바꾼 점이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기존질서를 깨뜨리는 것은 어느 시점에서나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그 어느때보다도 이같은 혁신이 요구된다.

디지털화 글로벌화 규제완화 등 끊임없는 변화의 세월이기 때문이다.

< 박재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