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2차 기자회견룩이 또다시 온라인에서 화제다.지난달 31일 오후 임시주주총회 관련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에 민 대표는 노란색 크롭 카디건에 청바지를 입고 등장했다. 전날 유임에 성공한 만큼 웃음기를 띤 밝은 표정으로 "승소하고 인사드리게 돼서 가벼운 마음"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주주들에게 자신이 경영자로서의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당당하고 밝은 모습이었다.첫 기자회견 당시 맨얼굴에 모자를 눌러쓰고 '맞다이'를 외치던 전사는 어디로 가고 화사한 옷 색상 만큼이나 표정도 다채로웠다.기자회견 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민 대표의 옷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문의가 쇄도했다.그가 입은 카디건은 2016년 도쿄에서 설립된 패션 브랜드 퍼버즈(PERVERZE)의 '모헤어&울 데미지드 니트 카디건'. 2022년 출시된 제품으로 현재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판매가 종료됐다. 판매 당시 가격은 55만원이었다.기자회견 후 '민희진옷' 키워드가 관심 키워드로 등극하자 당일 리셀 플랫폼에는 같은 제품이 120만원에 올라오기도 했다.패션리더로서의 면모도 과시 중인 민 대표가 1차 기자회견에서 선보인 럭비티셔츠와 파란색 볼캡 또한 회견 종료와 동시에 해당 제품이 품절돼 화제가 됐다.이와 관련해 민 대표는 이날 당시를 회상하며 "절박한 마음에 급작스럽게 서면서 3일 동안 옷 못 갈아입고, 세수도 못 한 상태에서 나왔는데 제 추한 모습에서 강박을 극복한 것 같다"고 말했다.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올해 첫 비브리오패혈증 사망자가 나와 질병관리청이 주의를 당부했다.전북특별자치도가 31일 "비브리오패혈증 예방 수칙을 준수해달라"고 당부했다. 비브리오패혈증은 비브리오 패혈균(Vibrio vulnificus) 감염에 의한 급성 패혈증이다. 비브리오패혈균은 해수 온도가 18도 이상일 때 증식하며 해산물을 날로 먹거나 덜 익혀서 먹을 때, 상처가 난 피부가 오염된 바닷물과 접촉할 때 감염이 가능하다.질병관리청은 비브리오패혈증에 걸리면 급성 발열, 오한, 혈압 저하, 복통, 구토, 설사 등의 증상이 동반되고, 증상 시작 후 24시간 내에 다리 쪽에 발진, 부종, 수포(출혈성) 등의 피부병변이 생기므로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에 방문하여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전북자치도가 권한 예방 수칙은 △어패류 완전히 익혀 먹기 △상처가 바닷물에 닿으면 깨끗한 물과 비누로 씻기 △생굴 등 어패류 취급 시 장갑 착용 △어패류 5도 이하 저온 저장 △어패류 조리에 쓴 도마와 칼 소독 등이다.한편, 질병청은 지난 22일 "올해 처음으로 70대 여성이 비브리오패혈증으로 숨졌다"고 발표한 바 있다.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바다의 역사는 곧 유럽의 역사였다. 유럽인은 활동 반경을 꾸준히 넓혔다. 처음엔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그다음엔 태평양으로. 반면 아시아인은 해양 진출에 무관심했다. 중국 명나라 때 정화가 아프리카까지 가긴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진취적이고 모험심 가득한 유럽인, 자기 나라에만 틀어박힌 아시아인. 우리는 그렇게 둘을 대비해 생각한다. 유럽이 세계를 장악한 원동력도 여기에서 찾는다.그런데 최근 학계에선 태평양과 아시아 바닷길 등 그동안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지역의 역사를 되살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에릭 탈리아코초 미국 코넬대 역사학과 교수가 쓴 <아시아 500년 해양사>도 바로 그런 책이다. 아시아 해양 교류가 본격화된 15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약 500년에 걸쳐 아시아 곳곳의 풍경을 다채롭게 펼쳐낸다. 먼 나라와 무역을 하고 교류하는 역동적인 모습이다.저자는 아프리카 남동부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동쪽 해안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그 흔적을 찾는다. 이들은 아시아인을 닮았다. 마다가스카르 서쪽 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유전자를 검사했더니 혈통의 기원이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에 있었다. 학자들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1000년도 전부터 아프리카와 교류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동아프리카에서는 중국의 흔적이 보인다. 이곳에선 해변을 걸을 때 명나라 청화백자 파편에 발을 베일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저자는 “중국 기록을 보면 적어도 송나라 때 이미 아프리카가 알려져 있음이 분명하다”고 했다. 정화의 대원정이 중국 해외 진출의 정점이었던 것은 맞지만 그 이전에도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다.‘500년 역사’라고 했지만 책이 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