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정치권에서는 영수회담을 여는 등 경제살리기 대책을 세운다며
법석을 떨었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도 양주나 사치품수입을 억제하고 모두 허리띠 졸라
매자며 호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법석은 그때 뿐 그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정치권에서는 한보사태 이후 치닷는 혼미상태와 임기말의 권력누수
그리고 곧 닥쳐 올 대선정국에 경제문제는 아랑곳없이 소위 용들은 세몰이에
여념이 없다.

요새 방송국이나 신문사가 대선 예비 후보자들을 불러 토론회를 가지고
있으나 질의자나 후보자들도 경제에 별 관심이 없다.

왜 그토록 수선을 떨며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지 그
동기를 알 수 없다.

통계지표에 따르거나 국내외 여건을 따져보면 분명 우리 경제의 앞날은
밝지가 않다.

이미 외채는 천억달러를 넘어섰고 지난해의 무역수지 적자는 2백억달러를
훨씬 웃돌았다.

올해의 적자는 지난해보다 더 커질 것이라고 한다.

사정이 이토록 급박함에도 우리의 살림에서는 그런 급박한 흔적을 전혀
찾기가 어렵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데도 길에는 나홀로 차로 가득 찼고 수없이 많은
전자광고판은 누가 보든 말든 높은 건물 옥상에서 24시간 내내 번득이고
있고 서울거리는 온통 색색의 네온싸인으로 현란하다.

그뿐인가, 백화점에는 수입 식료품, 고급의류와 가구 혹은 전자제품들이
지하층에서 꼭대기층에 이르기까지 점차 그 자리를 메워가고 있다.

먹다 버리는 음식찌꺼기만도 10조에 이른다니 누가 우리의 경제를 위기라고
믿겠는가.

1인 국민소득이 5천달러요, 1만달러라 하며 우리가 부자나라가 된 것처럼
부추긴 지난날의 정부의 정책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졸부심리만 부풀게 했고
열등감을 메우고자 돈 씀씀이 헤프게 된 것이 결국 오늘의 어려움을 낳게 한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아무런 대책없이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우리 경제가
파국을 맞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의식하지 않는데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는가.

분별없이 마구 수입해 오는 양주나 사치성 가구 등도 그 일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외채나 무역적자의 대목은 그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기계설비 등 우리의 기술이 모자라 외국에서 사들여오는 각종
자본재들이고 국제경쟁력을 잃은 우리 제품이 외국에서 시장성을 잃은데에
있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의 백화점이나 전자제품가게에 내놓은 우리나라
유명메이커의 텔레비젼 등 가전제품이 유럽의 필립스사나 일본의 소니제의
값에 훨씬 뒤처져 있고 그들 제품에 떠밀려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근래에는 그나마도 그런 물건을 찾기 어렵다.

이같은 천대를 받고 있는 우리나라 제품을 대할 때 누구나 크게 자존심이
상하고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우리는 그 까닭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정성들여 그들의 물건과 거의 같게 만들었지만 그들은 우리의 기술을
믿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크게 평가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우리 제품에 대한 국제적 신용도가 극히 낮으며 디자인에서 뒤진
데다 우리의 몸에 밴 부실한 끝마무리가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보다 더 첨단적인 기술을 요하는 제품이면 불신의 폭은 더욱 커지고
따라서 그들의 물건과 맞설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지난 날 남의 기술을 쉽게 얻어와 이를 모방하여 만든 제품을 싸게 대량
으로 내다 팔았던 그런 방법으로는 이미 한계에 이른 것이다.

값이 싼 탓에 우리 물건을 사들여 온 중진국이나 후진국들도 언젠가 우리
제품의 질에 실망하여 등을 돌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결국 우리의 경제살리기는 국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는 일과 하루
속히 우리의 기술력을 키워 수출을 늘리는 일임을 알게 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먼저 차량의 부제운영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광고판의 광고를 시간제로 제한하는 일이고 네온사인도 대폭
줄여야 한다.

음식 찌꺼기 줄이기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이같은 절제운동으로 국민들은 경제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될 것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허리띠 졸라매기 운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절박한 것은 우리의 기술력을 키우는 일이다.

과학기술교육투자에 과감하여야 한다.

5년내에 총생산 5%를 과학기술육성에 투입할 것이라고 하지만 오늘날의
사정은 그토록 느긋하지 않다.

당장 획기적으로 투자하여 우리의 과학기술력을 급속히 신장시켜야 한다.

기업체들도 이제는 부동산투자나 기술모방 등 싸게 돈벌 생각말고 연구
개발에 과감히 투자하는 일이다.

남의 기술을 흉내낼 생각만 할뿐 연구개발 의지가 없는 기업체는 문닫는
것이 낫다.

대학도 크게 변신하여야 한다.

충실한 기술교육으로 유능한 기술자를 양성하여 이들을 우리나라 경제
부활의 주역이 되게 하는 것이다.

다가올 21세기에 아시아의 중심국가로서 그 영광을 찾는 길은 우리가 다시
마음을 다져 나라살리기에 헌신하는 일임을 명심하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