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의 실리콘밸리는 창조적인 사고방식과 독특한 생활양식을 고집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번듯한 대학을 마치고도 낡은 자동차 차고를 얻어 연구에 몰두,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정보화물결이란 지각변동을 가져온 진원지격인 장소다.

자연 나름대로 한가닥한다는 괴짜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회장은 실리콘밸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기인중의 기인이다.

그는 일본에 심취된 인물이다.

다른 거부들이 핸섬한 영국신사의 풍모를 지향하는데 비해 엘리슨은 일본의
생활양식을 고집하며 취미삼아 고미술품을 수집할 만큼 일본문화에 매료돼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집은 옛 일본 왕실별장이었던 가쓰라리큐를 재현한
건물이다.

그는 집안에선 일본식 옷(기모노)을 입고 일본식 신발(게다)을 신는다.

사무실에서는 커피대신 일본차를 마시며 사무실 진열장에도 사무라이의
칼과 갑옷을 전시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범상치 않은 생활양식을 고집하는 성향은 대학시절부터 우왕좌왕하는
고통스런 정신여정을 경험한 연후에 얻은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엘리슨 회장은 경영기법에서도 일본 것을 많이 배웠다고 말해왔다.

엄격한 품질관리, 파격적인 가격인하, 철저한 고객과의 약속이행 등을
오라클운영에 대입시킨 것이다.

기인은 보통 고집스러움을 바탕으로 하며 엘리슨의 고집은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에 있다.

엘리슨은 이를 알렉산드리아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이는 고대 그리스가 당대의 모든 서적을 모아 도서관을 지었다는 기록에서
힌트를 얻은 것.

한마디로 인간이 생각하고 기억하는 모든 것을 컴퓨터에 저장, 이를 언제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는 곳이 그가 꿈꾸는 세상이다.

PC한대가 있으면 할리우드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고 문서작성도 할 수 있는
세상, 그것은 또 엘리슨 회장이 들고 나와 컴퓨터업계에 선풍적인 반향을
불러왔던 네트워크컴퓨터(NC)란 구상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TV나 전화같은 가전제품이라고 보면 됩니다.

전원을 꽂고 개인이 전용카드를 끼우면 다른 어떤 것을 조작할 필요없이
자동적으로 통신망에 연결됩니다.

이용자 한사람 한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카드로 언제나 전자메일을 보낼
수 있고 워드프로세서용 프로그램도 불러낼 수 있습니다"

엘리슨 회장이 주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NC는 초기 "꿈의 상자"란
별명을 얻을 만큼 획기적인 것이었다.

특히 NC가 널리 보급되면 컴퓨터가격을 현재와 같은 고가에서 5백달러수준
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에게 상당한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다.

빌 게이츠가 기술을 지배하고자 하는데 비해 자신은 표준을 만들어내
기술을 공유하려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올해부터 보급이 본격화되고 있는 NC는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호평을 얻고
있다.

과연 엘리슨의 NC가 현재와 같은 고가의 하드웨어를 부착한 PC를 몰아내고
시장을 차지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기다려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설사 실패한다해도 NC는 컴퓨터발전사의 한획을 긋는 파격적인
구상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 박재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