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공기업 민영화는 해묵은 숙제다.

미국이나 일본에 하염없이 밀리는 기업의 경쟁력을 살리려면 민영화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넘쳐나는 실업자를 못본체 하고 이 작업을 밀어붙이는 것도 정치적
으로 쉽지 않다.

공기업을 민영화할 경우 정리해고와 명퇴자 등을 양산할수 밖에 없다.

총선을 앞둔 프랑스의 경우 이 문제는 민감한 선거이슈중 하나다.

알랭 쥐페 총리는 재집권하면 에어프랑스부터 민영화하겠다고 공언하지만
사회당 등 야당의 입장은 반대다.

25일의 프랑스 총선을 계기로 유럽의 민영화 현황에 대해 살펴본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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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각국은 공기업경영에 활기를 불어넣고 국제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
아래 대대적인 민영화계획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민간의 손으로 넘기겠다고 공언해 놓고도 계속해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공기업 "봐주기"에 여념이 없다.

그 과정에서 시장경쟁과는 거리가 먼 정책을 펼쳐 국내외업체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기도 한다.

올해중 민영화될 프랑스텔레컴만 봐도 그렇다.

프랑스정부는 민영화계획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를 싸고 돌기 바쁘다.

최근에는 프랑스에 진출한 미국회사들이 제공하는 국제콜백서비스에 20%의
부가세를 징수하는 조치를 취했다.

가격경쟁력에서 이들에게 밀리고 있는 프랑스텔레컴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또 국내경쟁업체들도 프랑스정부의 견제대상이다.

전화번호부서비스가 좋은 예다.

이 서비스를 국영기업의 독점업무로 지정하고 다른 국내업체들이 이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프랑스텔레컴측에 일정액의 이용료를 지불하도록
규정했다.

이런 불공정한 조치는 비단 프랑스뿐만 아니다.

이탈리아는 지난 94년 이동전화시장을 완전 개방했다.

그러나 신생업체들이 국영업체인 텔레컴이탈리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텔레컴이탈리아가 이들 업체들에게 터무니없는 전용회선임대료와 접속료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미국의 합작회사인 옴니텔의 경우 전체 매출액중 40%를 이같은
비용으로 텔레컴이탈리아측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고 있다.

접속료부담이 매출의 4%정도인 영국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탈리아 국영항공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곧 민영화가 될 알리탈리아항공사에 대한 정부의 "사랑"은 끝이 없다.

최근 이탈리아정부는 이 국영항공사에 20억달러의 자금지원을 승인했다.

또 규제규저에 맞도록 항공장비현대화를 위해 1억5천만달러를 추가 지원키로
했다.

물론 다른 항공사에는 단한푼의 정부지원도 없었다.

심지어 정부가 공기업의 독점적인 지위를 강화시켜 법적 소소에 휘말려
체면을 깍인 일도 있다.

유나이티드파슬서비스(UPS)는 최근 독일 국영체신회사인 도이치포스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도이치포스트가 정부로부터 27억달러를 지원받아 최근 초현대식 화물집배
센터를 완공했으며 이것이 국영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오히려 강화시켰다는게
그 이유다.

이와관련 EU집행위원회는 최근 도이치포스트에 경고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유럽국가들은 왜 이처럼 공기업민영화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일까.

민영화는 곧 대규모 감원과 직결되기 때문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 국가중 일부는 독점체계를 통해 그동안 누려 왔던
기업들의 기득권 포기를 꺼리고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같은 정부의 과보호속에서 자라온 국영기업들이
민영화이후에 과연 자생력을 갖고 치열한 국제경쟁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의아해한다.

단기적으로는 실업증가등 큰 고통이 따르겠지만 이를 극복해야만 공기업
민영화를 통한 "경제살리기" 노력이 효과를 발휘한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이들에겐 민영화에 관한한 가장 모범적인 이웃나라 영국이 더없이
휼륭한 교과서인 셈이다.

< 김수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