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돈암동에서 발생한 대단위 재개발아파트 단지의
축대붕괴사고는 그동안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등 숱한 대형사고를
겪고도 여전히 우리사회의 안전불감증이 고쳐지지 않았음을 재확인시켜
준다고 하겠다.

사고가 발생한 한진아파트는 설계 감리시공 입주 사후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이 총체적 부실투성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사고아파트 게시판에 부착된 "사전 입주민들이 아파트 안전문제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구청장명의의 경고성 안내문은 이번 사고의
위험성이 충분히 예견됐음에도 불굿하고 그대로 방치돼왔음을 입증해 준다.

사고아파트는 그동안 부실공사에 따른 말썽이 끊이지 않았던 곳으로 입주
2년이 다 되도록 아직까지 입주에 필요한 가사용승인 및 준공검사조차받지
못한채 조합이 입주를 강행해 주민안전문제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고 한다.

사고가 나자 조합 설계회사 시공회사 행정관청 등 당사자 모두가
책임회피에 급급한 것도 과거의 대형사고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물론 법적으로는 시공회사측이 피해보상 및 배상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판이지만 이번 사고의 원인을 단순히 부실시공 쪽으로만 축소시키려는
듯한 행정당국의 태도는 떳떳지 못하다고 본다.

이번 사고는 재개발관련 당사자 모두의 공통적인 안전불감증에다
건축과정에 따라다니는 불법 부정 부패의 관행이 복합적으로 어우려져
빚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알려진대로 이 아파트는 건축과정에서 일반분양분을 늘리기위해 조합
시공사 설계감리회사가 짜고 여러차례나 무단설계변경을 해 7백여가구를
불법으로 더 지었다.

이같은 불법행위는 관할구청이 사후허가방식으로 이를 묵인해줌으로써만
가능했을 것이다.

구청측은 사고 아파트의 수방대책이 미흡해 임시사용승인신청서를
반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측이 멋대로 입주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준공허가는 커녕 임시사용승인도 없이 2년 가까이 사용하고 있는데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조순 서울시장은 "모든 재개발아파트를 대상으로 철저한 안전진단을
실시하겠다"는 사후약방문같은 말만 무슨 뾰족한 대책이라도 되는양
되풀이하고 있지만 얼마나 정확한 진단이 될지는 의문이다.

사고가 난 한진아파트에 대한 두번의 안전진단 역시 "이상없음"이었다고
하니 우리의 안전진단이 얼마나 수박 겉 핥기인가를 실감케 한다.

한진아파트 뿐만 아니라 서울권의 경우 대부분의 재개발.재건축 아파트
사업지구가 가파른 경사지이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성은 도처에 널려있는
셈이다.

특히 이번 한진아파트축대처럼 봄비에도 무너질 정도라면 앞으로 닥쳐올
본격적인 여름장마를 어떻게 견뎌낼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모든 건설현장의 안전관리대책은 물론 국민 모두의
안전의식에 대한 철저한 재점검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