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렬

음지가 양지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중소기업들이 희망을 잃지않고 갖은 고생을 견뎌내는 이유가 여기 있는지
모른다.

특히나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운 때에 어떤 기업이 이러저러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성공한 기업을 살펴보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우리도 운이 닿으면 성공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안일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계적인 캐쥬얼 의류업체인 이탈리아의 "베네통"은 그 좋은 예이다.

지금은 세계 1백20여개국에 무려 7천개가 넘는 점포를 갖고 연간
20억불 상당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대기업 베네통이지만 1965년까지만
해도 가내 수공업 형태로 스웨터를 만들어 팔던 영세업체에 불과했다.

베네통을 성공하게 만든 것은 바로 혁신적인 색채와 디자인이었다.

당시 스웨터는 의류중에서도 보수와 전통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베네통은 혁신적인 발상으로 원색을 이용한 강렬한 디자인의
스웨터를 만들어 젊은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한편 기존 스웨터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고 "패션화"하여 대 히트를 쳤다.

이후 베네통은 색깔만 보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베네통 스타일"을
일관되게 구축하고 발전시켜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신선함을 제공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필립스 역시 모범적인 사례이다.

1939년에 처음 개발된 필립스 전기면도기는 지금까지 3억개가 넘게
제조.판매되고 있고 7억달러 상당의 연간 매출을 기록하며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이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디자인 개발에
노력한 결과였다.

디자인 전략을 통한 성공사례는 결코 다른 나라에만 있지 않다.

전기압력밥솥을 생산하는 중소업체 대웅전기는 일찍부터 디자인의
중요성을 간파하여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KIDP)의 지원으로 디자인
신모델을 개발한 결과 불황 중에도 매출 총액이 2년 연속 50%씩
증가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신상품 개발을 전업으로 하는 부키월드라는 소기업도 최근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다용도 독서대를 내놓아 활기를
띄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본순회전시와 올해 2월 뉴욕선물용품박람회에서 큰 인기를
끌어 1백만달러어치의 수주를 올렸고 지금도 신규상담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상품에 있어서 디자인은 생각보다 크고 결정적인 성과를
가져다주는 효과적인 경영전략인 것이다.

특히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는 디자인 전략이 경쟁력과 부가가치 창출의
핵심요소로 되어 있다.

지금 우리 경제와 기업들은 그야말로 매일매일 사선을 넘나들고 있는
듯하다.

올한해 무역수지적자 억제목표가 1백40억달러였는데 이미 1.4분기에
그 절반이 넘는 74억달러를 기록, 외채가 계속 누적된다는 기가 막힌 뉴스,
연이어 터지는 크고 작은 기업들의 부도사태, 3%을 넘어선 실업률,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 지 해법이 암담한 문제들이 온통 뒤엉켜
있다.

소비절약 노임안정 SOC확충 중소기업 지원확대 등 여러 방안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장의 기업인들에게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무한경쟁의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의 상품과 기업이 끝까지
버텨내고 성공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무엇보다 "팔리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우리 수출상품들의 대부분이 디자인이나 가격측면에서 경쟁력을
상실하여 팔리지 않고 있다.

상품을 무역전선의 병사에 비유한다면 지금 그 병사들의 전투력이
급격히 떨어져 계속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각종 새로운 상품이 대체 투입되어 무역전선을 지켜야 하는데
수출을 촉진시킬 새로운 상품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수출상품이 경쟁력이 없다는 평을 듣는 이유는 결국 소비자
욕구와 시장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수요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위주의 전략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품이 외면당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가장 어려울 때가 오히려 도약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가 된다.

불황일수록 디자인전략을 잘 세워 과감하게 추진한다면 기존의
경쟁업체를 앞지르거나 업계의 구도를 바꾸는 것이 호황일 때보다 훨씬
수월하다는 사실을 국내외 기업의 성공사례를 통해 배웠으면 한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새로운 디자인 상품을 개발하여
이를 수출로 연결하여야 할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