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경영풍토와 강성 노조가 뿌리 내려온 유럽대륙에서 요즘
사생결단식으로 리스트럭처링을 밀어붙이는 최고경영자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경쟁력 회복을 위해서라면 감원과 부서통폐합은 물론 적대적 합병인수
(M&A)까지 불사하겠다는 경영자들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탈유럽식" 리스트럭처링은 원조인 미국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메가톤급 기업혁신으로 비춰져 유럽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요즘 유럽대륙에서 탈유럽경영을 선도하고 있는 최고경영자로는
<>르노자동차의 루이 슈바이처회장과 <>에어프랑스의 크리스티앙 블랑회장
및 <>독일 크루프철강의 게하르트 크롬회장 등 3인이 손꼽히고 있다.

우연하게도 이들 회장들은 금년 54세로 나이가 똑같다.

또 동갑나기 회장들은 파급효과가 엄청난 대기업을 이끌고 있는데다
유럽인 정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경영을 구사해 유럽경영계의
"이단자"로 불리고 있다.

이들이 최근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또 다시 "큰 일"을 벌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함께 받았다.

루이 슈바이처 르노회장은 지난2월말 벨기에공장을 폐쇄한다고 발표해
벨기에 정부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박애주의자인 슈바이처박사의 손자이기도 한 르노회장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면 벨기에에서 3천1백명의 근로자를 실업자로 만든 공장
폐쇄결정외에 곧 프랑스공장에서도 2천7백명정도의 인원감축이 계획돼
있다고 밝혔다.

벨기에 정부와 프랑스정부가 실업대책으로 비상을 걸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노조원들이 파리 근교의 르노본사 앞에서 회장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화형식을 하는 시위를 벌이는데도 불구하고 슈바이처회장은 경쟁력 회복을
위해 오는 98년과 99년중에도 각각 3천명의 추가 감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르노가 3-4년안에 유럽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자동차회사가 될 수 있도록
군살을 과감하게 제거하겠다는 것이 슈바이처회장이 내세우는 탈유럽식
경영이다.

크리스티앙 블랑 에어 프랑스 회장은 지난93년에 취임한후 얼마되지
않아 바로 미국식 경영혁신을 도입했다.

블랑회장이 본격적으로 리스트럭처링을 시작한 94년 3월이후 지금까지
약 3년동안 에어프랑스의 생산성이 30%정도 높아졌고 경상비용은 20% 가량
줄어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블랑회장의 고비용 저효율 타개전략은 강성으로 소문난 에어프랑스
노조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어왔다.

결국 지난달에는 국내선인 에어프랑스유럽의 승무원들이 임금삭감을
반대하면서 파업에 돌입해 프랑스인들의 부활절을 망쳐놓았다.

블랑회장은 좌파정치인 출신으로 임금구조 개선등을 통해 감원만은
단행하지 않겠다고 공언해 국내 노조지도자들사이에서 비교적 인기가 있는
경영인으로 통하고 있다.

그러나 경영효율을 위해서라면 유럽산 에어버스 구매계약을 취소하고
미국 보잉기를 도입할 정도로 과감한 경영을 구사하고 있다.

이 항공기계약변경으로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다는 후문이
있다.

게하르트 크롬 크루프 철강회장은 지난달 적대적 M&A를 선언하며
주권공개매수를 공시해 독일증권가를 부산하게 만들었다.

독일에선 적대적 M&A 자체가 아직도 매우 드문 현상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크롬회장은 크루프가 독일내 라이벌 철강회사인 티센과 하루라도 빨리
합병을 하지 않으면 독일 철강산업 전체가 고비용체질로 침몰한다고
주장했다.

이에따라 독일사람들이 비열한 행위로 치부하는 적대적 M&A라는
극약처방을 동원해 티센과의 합병을 강요했다.

"크롬회장의 반란"은 두 회사의 대주주 및 관련 기관투자가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계기가 됐다.

기관투자가들의 중재로 크루프과 티센이 두 회사 상호합의 아래 전략적
으로 제휴키로 하는 헤피 엔딩으로 끝을 맺어 독일 경영계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고실업 저성장의 선진국병을 않고 있는 유럽국들이 경제를 바로잡는
구조조정에 성공할지 여부는 슈바이처, 블랑, 크롬회장같은 최고경
영자들의 탈유럽 전략경영이 가져올 성과에 달려있다.

< 양홍모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