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규제개혁과 국민협조 .. 강병호 <한양대 교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요즈음 규제완화라는 말보다는 규제철폐나 탈규제라는 표현이 더 보편화
되고 있는 느낌이다.
공동체사회에서 규제가 전혀 없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인 것
같다.
그러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우리 나라의 규제가 심하다고
지적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표현이 등장하게 된 현실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간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지속적인 규제완화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와 같은 목소리가 작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규제자인 정부의 탓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정부기관들의 권한행사에 대한 집착과 부서이기주의 등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규제완화가 미흡한 이유로 규제를 수용하는 피규제자나 시장에
참가하는 국민 모두의 탓도 이에 못지 않게 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경제학에서 규제가 왜 발생하는 가를 설명하는 논리로 "자기보호가설"
이라는 것이 있다.
규제는 규제로 인해 이득을 얻는 피규제자가 자신의 기득권이나 규제로
인한 배타적이익을 향유하기 위해 규제자로 하여금 규제를 하게끔 로비나
압력을 가함으로써 발생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정부의 정책에 대해 자문하는 모 회의에서 정부의 금융산업에
대한 진입장벽 완화계획을 심의한 적이 있다.
그날 회의는 2시간여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진입장벽을 완화해서는
안된다는 업계의 소리가 주류를 이루었다.
수용태세가 되어있지 않는 상태에서 진입장벽을 완화하면 관련업계는 모두
망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것은 철저하게 지키고 남의 것은 가능한 한 많이 뺏어야 한다는
집단 이기주의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현재 진행중인 노동관련법 개정문제도 그렇다.
노사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규제는 존속내지 강화되어야 하고 불리한
규제는 풀라는 것이다.
노동시장도 여타 생산요소시장과 마찬가지로 시장경제의 원칙이
지배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큰 미국과 영국의 경우 현재 자연실업률에 근접하는
고용사정 등으로 더 이상 좋을 수없는 경제적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반면
노동시장이 상대적으로 경직적인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10%가 넘는 실업으로
고전하고 있고 일본은 경기의 반전시기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규제개혁은 각종 인허가 규정이나 규제기구의 축소 등 제도의 개혁만으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규제의 정도는 국민의 의식수준과 사고체계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일수록 규제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규제가 적다고 해서 곧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쿠즈네츠 교수는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겪게 되는
마지막 고비는 국민의 의식수준이라고 했다.
즉 실물경제의 발전속도에 맞추어 상응하는 국민들의 의식주준이 상승하지
않는한 더 이상의 실물경제의 발전은 벽에 부닥치게 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규제개혁의 경제주체들이 얼마나 이기심을 자제하고 자율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먼저 규제업무를 관장하는 일선 담당자나 이를 수용하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과 사고체계의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간 정부 나름대로의 규제완화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은 규정이 많고 까다로워서라기 보다는 일선담당자와
국민들간의 세련되고 원만하지 못한 관행이나 인간관계때문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규제개혁이 꼭 규제를 적게 해야 한다는 것만도 아니다.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하게 철폐해야 하지만 필요한 규제는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경쟁의 조장에 의해서도 경쟁적 시장의 운영이 가능하지 않거나 소득의
불공정한 배분 등 사회적 후생의 최적화가 달성되지 않는 상황 이른바
시장실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가 불가피하다.
특히 금융산업과 같이 공공성의 외부성이 강한 산업의 경우 경쟁의 촉진에
의한 능률의 제고를 기하기에 앞서 금융시스템의 안정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한보사태를 위시한 최근의 사회적 불안으로 우리 경제가 국내외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 그 예이다.
한편 규제는 그 정도에 못지않게 규제의 형평성도 중요하다.
규제의 차별은 규제를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자에게는 보조금을 주고
규제를 많이 받는 자에게는 세금이나 벌금을 부과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 사회에 만연하였던 각종 특혜논쟁도 따지고 보면 규제의 차별에
기인한 것이다.
규제 및 감독의 효율성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특히 규제기관들의 집단이기주의를 과감히 배제하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토대위에서 규제 및 감독체계의 재설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규제 및 감독기관은 없는지, 동일기관 또는 유사업무에 대해
중복된 감독은 없는지, 정작 감독이 필요한 부문에 대해 감독의 사각지대는
없는지, 감독기관간의 업무나 권한배분은 적절하고 합리적인지, 감독기관간의
정보교환 등 유기적 협조체제가 구축되어 있는지, 국제화시대에 맞게 감독
제도의 국제적 정합성이 유지되어 있는지 등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최근 규제개혁이 매우 미흡하다는 여론이 비등함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치인이 직접 규제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치인들만으로 이를 제대로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앞서는 것을 숨길 수 없다.
특히 지금까지 규제개혁이 미흡한 주된 이유가 이해관계자간의 비생산적인
지대(rent) 추구행위에 기인한 것임을 고려할 때 이해집단의 대변자인
정치인이 과연 이해관계를 떠나 이를 중립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결론적으로 규제개혁은 규제주체인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되 모든
국민들이 이에 동참하고 협조하는 방향이 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래서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는 듯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4일자).
되고 있는 느낌이다.
공동체사회에서 규제가 전혀 없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인 것
같다.
그러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우리 나라의 규제가 심하다고
지적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표현이 등장하게 된 현실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간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지속적인 규제완화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와 같은 목소리가 작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규제자인 정부의 탓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정부기관들의 권한행사에 대한 집착과 부서이기주의 등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규제완화가 미흡한 이유로 규제를 수용하는 피규제자나 시장에
참가하는 국민 모두의 탓도 이에 못지 않게 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경제학에서 규제가 왜 발생하는 가를 설명하는 논리로 "자기보호가설"
이라는 것이 있다.
규제는 규제로 인해 이득을 얻는 피규제자가 자신의 기득권이나 규제로
인한 배타적이익을 향유하기 위해 규제자로 하여금 규제를 하게끔 로비나
압력을 가함으로써 발생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정부의 정책에 대해 자문하는 모 회의에서 정부의 금융산업에
대한 진입장벽 완화계획을 심의한 적이 있다.
그날 회의는 2시간여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진입장벽을 완화해서는
안된다는 업계의 소리가 주류를 이루었다.
수용태세가 되어있지 않는 상태에서 진입장벽을 완화하면 관련업계는 모두
망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것은 철저하게 지키고 남의 것은 가능한 한 많이 뺏어야 한다는
집단 이기주의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현재 진행중인 노동관련법 개정문제도 그렇다.
노사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규제는 존속내지 강화되어야 하고 불리한
규제는 풀라는 것이다.
노동시장도 여타 생산요소시장과 마찬가지로 시장경제의 원칙이
지배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큰 미국과 영국의 경우 현재 자연실업률에 근접하는
고용사정 등으로 더 이상 좋을 수없는 경제적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반면
노동시장이 상대적으로 경직적인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10%가 넘는 실업으로
고전하고 있고 일본은 경기의 반전시기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규제개혁은 각종 인허가 규정이나 규제기구의 축소 등 제도의 개혁만으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규제의 정도는 국민의 의식수준과 사고체계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일수록 규제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규제가 적다고 해서 곧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쿠즈네츠 교수는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겪게 되는
마지막 고비는 국민의 의식수준이라고 했다.
즉 실물경제의 발전속도에 맞추어 상응하는 국민들의 의식주준이 상승하지
않는한 더 이상의 실물경제의 발전은 벽에 부닥치게 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규제개혁의 경제주체들이 얼마나 이기심을 자제하고 자율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먼저 규제업무를 관장하는 일선 담당자나 이를 수용하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과 사고체계의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간 정부 나름대로의 규제완화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은 규정이 많고 까다로워서라기 보다는 일선담당자와
국민들간의 세련되고 원만하지 못한 관행이나 인간관계때문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규제개혁이 꼭 규제를 적게 해야 한다는 것만도 아니다.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하게 철폐해야 하지만 필요한 규제는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경쟁의 조장에 의해서도 경쟁적 시장의 운영이 가능하지 않거나 소득의
불공정한 배분 등 사회적 후생의 최적화가 달성되지 않는 상황 이른바
시장실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가 불가피하다.
특히 금융산업과 같이 공공성의 외부성이 강한 산업의 경우 경쟁의 촉진에
의한 능률의 제고를 기하기에 앞서 금융시스템의 안정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한보사태를 위시한 최근의 사회적 불안으로 우리 경제가 국내외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 그 예이다.
한편 규제는 그 정도에 못지않게 규제의 형평성도 중요하다.
규제의 차별은 규제를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자에게는 보조금을 주고
규제를 많이 받는 자에게는 세금이나 벌금을 부과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 사회에 만연하였던 각종 특혜논쟁도 따지고 보면 규제의 차별에
기인한 것이다.
규제 및 감독의 효율성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특히 규제기관들의 집단이기주의를 과감히 배제하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토대위에서 규제 및 감독체계의 재설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규제 및 감독기관은 없는지, 동일기관 또는 유사업무에 대해
중복된 감독은 없는지, 정작 감독이 필요한 부문에 대해 감독의 사각지대는
없는지, 감독기관간의 업무나 권한배분은 적절하고 합리적인지, 감독기관간의
정보교환 등 유기적 협조체제가 구축되어 있는지, 국제화시대에 맞게 감독
제도의 국제적 정합성이 유지되어 있는지 등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최근 규제개혁이 매우 미흡하다는 여론이 비등함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치인이 직접 규제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치인들만으로 이를 제대로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앞서는 것을 숨길 수 없다.
특히 지금까지 규제개혁이 미흡한 주된 이유가 이해관계자간의 비생산적인
지대(rent) 추구행위에 기인한 것임을 고려할 때 이해집단의 대변자인
정치인이 과연 이해관계를 떠나 이를 중립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결론적으로 규제개혁은 규제주체인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되 모든
국민들이 이에 동참하고 협조하는 방향이 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래서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는 듯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