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협찬금요청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9.3 경제종합대책"에서 준조세 경감을 선언했지만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기부금모집이나 각종 행사의 협찬 및 후원요청이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특히 지방소재기업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어떤 대기업은 공장이 소재한 지자체의 요청에 따라 3백여억원을 들여
4.7km의 6차선도로를 개설해준 바 있다.

이 회사는 또 개천 준설작업과 하천오염정화시설을 무료로 해주기로
했으며 매년 시민의 날 행사, 마라톤대회 등에 광고를 하는 방식으로
협찬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가 주최하는 국제행사, 특히 체육행사에는 직접 관련이 없는
업종의 기업들까지 후원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수억원씩을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어떤 지자체에서는 관내에 공장도 없는 회사에게 스폰서로 나서줄
것을 요청하면서 협찬금으로 10억원을 요구했다.

심지어 관내 학생들에게 줄 장학금까지 지원을 요청하는 지자체도 있다.

기업들은 이같은 사례를 언론에 밝히기를 꺼리고 있지만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라는 게 기업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모그룹관계자는 "지방자치제 실시이후 지자체장들이 경쟁적으로 주민위안
잔치 등 각종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그 경비를 후원이나 협찬명목으로 관내
기업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작년 한 해만 해도 그룹 전체적으로 지자체
행사후원경비가 10억원에 육박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자체 행사 후원요청과 함께 각종 공익재단의 기부금품 요청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구로공단내 입주업체인 S사 관계자는 "해마다 수십종의 공익단체로부터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의 기부금과 후원금요청을 받고 있는데 특히
재작년부터 그 빈도가 급증했다"며 "일반인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때문에 경제계에서는 기업들이 임금.금리.지가.물류비.행정규제 등
"5고"에 준조세까지 겹친 "6고"때문에 경쟁력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세청자료에 따르면 지난 95년중 기업들이 낸 기부금액은
2조7천44억원으로 94년에 비해 34.3%가 늘어났다.

행사후원금이나 기부금같은 법정외 준조세말고도 정부가 법으로 정해
부과하는 분담금 등 각종 행정부과금도 급증, 기업들의 허리를 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재정경제원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지난 95년의 경우 기업체에 부과된 각종
행정부과금은 46종이나 되며 그 규모도 6조1천여억원으로 94년보다 16.7%나
증가했다.

한 그룹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부처마다 경쟁적으로 준조세성격의
부담금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로 인해 기업들에게는 2중, 3중의
부담이 가해지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같은 준조세의 성행은 국내 기업들의 경영수지를 악화시키는 주요인이
되고 있는데 특히 작년말 중소기업청의 조사에서는 중소기업 1개업체당
준조세가 6천7백여만원에 달해 당기순이익의 22%를 준조세로 낸 것으로
나타났다.

< 임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