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무역수지 적자, 누적된 외채, 노사문제 등 경제 위기설로 날을
새고 있다.

그런데 나라 경제를 살리자,이렇게 해야 수출이 된다 하는 해법들을 보면
일률 단편적으로 고금리, 고임금, 고지가, 고물류비, 국민의 소비성 등
대충 이렇다.

경제학적 이론에다 통계학적 추론을 내뱉고 있을 따름이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폴 사무엘스 마저도 경제정책을 다루는 관료나
정책입안가들은 그 원칙이나 이론을 실물 경제에 대입시킬 때 양념을 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만큼 실물 경제에 부딪치는 산업 현장이나 마케팅 담당자의 현실 인식과
상황 대처에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는 경고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경제 관료들이 몸으로 발로 산업 현장을 누비며
그들과 머리를 맞대고 우루과이 라운드, WTO, OECD 이후에 불어닥칠 엄청난
국내시장의 파장을 토론해 봤으며, 그러한 체험을 가지고 국가 대 국가의
쌍무적 다자간 협상에 임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깊이 반성해 볼 시점이다.

입만 열면 중소기업 지원이다, 육성이다 하지만 한보사태에서도
입증되듯이 우리나라 금융권의 구조가 어디 중소기업들이 은행문을
두드린다고 해서 쉽게 문이 열리는 상황이던가.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도 창의성 있는 개인이나 중소기업들에 신용
하나만을 가지고 5억원까지 30년 상환으로 시중금리보다 싼 저렴한
이자로 대출해 주는 미국의 SBA 같은 대출 기관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

한보에 투자되었던 5조원의 돈을 21세기 첨단 제품을 만들려고 하는
꿈많은 기업가들에게 골고루 투자되었더라면 더욱더 많은 국가적 결실이
있지 않았겠나 생각해 본다.

대우의 복주, 현대의 브로몽, LG의 제니스, 삼성의 AST 사례와 같이
지구촌 경영 전략이란 미명하에 벌리고 있는 대기업들의 해외 투자도 막대한
투자 손실을 보면서 문을 닫거나 경영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철저한 판단과 경험에 의한 결정이 아니었음은 물론 현지 경영미숙에서
기인한다고 보겠다.

이는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대기업들은 이제부터라도 21세기에 불어닥칠 자원 전쟁에 대비한
해외 투자와 국내 산업의 공동화 방지에도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어려운 나라 경제를 살리는 길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이들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을 수 없게만든 것은 정부가 일차적으로
져야할 책임이다.

우리국민들의 국력에 대한 인식부족도 수출한국의 큰 걸림돌이다.

10대 강국 선진국 일등 국민 어쩌고 하는 허상의 껍질을 하루속히 벗고
우리 자신을 냉철히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역 적자 37억달러, 대외 부채 1천2백억불 IMF 경상 수지 위험 국가 육박
경고, 국민 1년간 해외 경비로 쓴돈 정부 예산의 십분의 일, 세계 개인적
석유 소비량 7위가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의 실상은 이제 개발도상국에서 막 벗어나 선진국 문턱으로 가고 있는
경제 중도국일 따름이다.

80년대초 미국 경제가 일본의 수출 드라이브에 밀려 곤두박칠 치고 있을때
채택된 대안이 3S 전략이다.

발빠른 조직(Speed System), 신속한 상품개발(Speed Creation), 신속한
집행(Speed Decision)이다.

이 전략이 90년대 들어와 일본을 완전히 압도해 버린 것이다.

이제 우리도 일본의 모방 시스템인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이사 부장 과장
평사원 같은 구시대적 구조로는 안된다.

사장 상무 과장 평사원 line 만으로도 충분하다.

스피드 경영의 첫단계다.

수출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 원가를 결정하는 생산성에 있다면 더욱 큰
원인은 상품을 판매하는 마케팅 능력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는 한국이 왜 유독 동일한 미국 시장에서 중하권에
있는 홍콩 대만 싱가포르에 밀리는가.

그들이 우리보다 인구 면적 자원이 많은 나라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왜 우리보다 높은 GNP와 외환 보유고를 자랑하는가.

한마디로 거품이 없는 그 나라 국민들의 수출 정신과 탁월한 장사
기술이다.

오늘날 대학의 무역학과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배출되고 있지만 오늘
우리나라가 가장 필요한 마케팅 기술 대신에 고답적 경제 이론 학습과 취직
전선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늦게나마 정부가 실물경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천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연차적으로 대학들에 지원한다고 한다.

이제 대학당국은 석.박사 자격 따지지 말고 지구촌 곳곳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흥정하며 담판하며 뛰었던 수출 전사들을 과감히 발굴하여 강단에
세워야 할 때다.

이것은 시급한 시대적 요청이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21세기 수출 한국을 짊어질 미래의 역군들에게
생생한 체험 현장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스승들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