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개정을 둘러싸고 노사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가운데 노총이 지난달
31일 11.2%의 높은 임금인상안을 제시함으로써 예상대로 올해 임금협상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노총은 오는 3월1일까지 개정노동법이 국제기준에 맞게 재개정되지
않으면 법개정으로 인한 임금손실분 7.2%를 더해 인상요구율을 18.4%로
높이겠다고 위협하고 있어 어느 때보다 큰 진통이 예상된다.

이같은 노총의 두자리수 인상안에 대해 경총은 터무니 없다는 반응을 보이
면서 전체적으로 임금인상률을 0%에 가깝도록 하는 재계안을 가까운 시일내에
내놓겠다고 밝히고 있다.

해마다 노.경총간 임금안이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나 올해의 경우
두자리수에 이르는 격차를 무슨 수로 메울수 있을지 걱정이 아닐수 없다.

우리는 노총이 제시한 올해 임금인상안및 협상전략과 관련해 다음 몇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임금인상 요구액이 올해의 경제여건과 기업환경에 비추어 지나치게
높다.

지금 국내 기업사정은 수출 부진과 경기침체에다 노동계 파업의 후유증과
한보사태가 겹치면서 최악의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설을 앞두고 임금을 받지못한 근로자수는 작년보다 88.7%가 많은 5만8백여명
에 이르고 있으며 밀린 임금이 1천1백80억원으로 93년 한양 부도사태이후
최대규모를 기록하고 있다고 노동부는 밝히고 있다.

내로라 하는 대기업마저 임금을 제때에 못줄 정도이다.

임금마저 제대로 받을수 없는 상황에서 두자리수의 인상을 요구한다는 것은
우리의 기업사정을 무시한, 너무나 비현실적인 처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둘째 노동법 재개정과 임금문제를 연계시키려는 전략은 옳지 않다.

임금은 물가 노동생산성 등 경제여건과 개별기업의 사정 등을 엄밀하게 계산
하여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노동법이 시행되면 7.2%의 임금손실이 발생한다는
근거불명의 일방적인 주장을 내세워 노동법을 재개정하지 않으면 이를 임금
인상요구에 반영하겠다는 것은 노동법을 노조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재개정
시키기 위해 임금을 인질로 잡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런 식의 접근방법으로는 노동법 재개정도 임금협상도 제대로 될수가 없다.

지금 우리의 경우처럼 경제성장률이 자꾸만 떨어져가는 상황에서는 임금보다
고용이 더 큰 문제가 된다.

노총이든 경총이든 경기침체기에 형성되고 있는 이같은 사회적 컨센서스를
무시해선 안된다고 본다.

종합적인 경제운용의 틀을 깨는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임금인상안으로는
단위사업장의 임금협상에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제반 여건을 고려해 볼때 올해의 임.단협상은 임금보다 기업경쟁력 강화와
근로자의 능력개발 쪽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이는 노사관계 선진화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