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착수 4일째인 30일 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에 대한 전격 소환이
이뤄지면서 수사가 급진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총회장은 이날 조사에서 침묵으로 일관, 검찰수사진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밤 대검청사 건물은 어둠속에 잠겼으나 11층 대검중수부
조사실과 10층 대검 중수1,2,3과만은 불이 꺼지지 않은채 정총회장에
대한 조사가 철통같은 보안속에 진행중.

11층 조사실로 들어가는 문은 굳게 잠겨 있고 안에서는 히터 돌아가는
소리외에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아 조사진척도를 파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

다만 고함이나 추궁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나름대로
조사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으나 정총회장의 전력상
완강한 버티기와 함구로 일관, 수사진이 애를 먹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

<>.이정수 수사기획관은 이날밤 10시20분께 기자들과 만나 "오늘밤
안으로는 정총회장에 대한 영장이 청구되지 않을 것"이라며 "정총회장도
귀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

특히 정총회장이 조사도중 귀가하겠다고 할 경우 체포영장이 들어갈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 이기획관은 "정총회장이 오늘 귀가하면 내일 다시
들어와야 하는데 또다시 수십여명의 보도진앞에 서는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이라며 "정총회장이 조사도중 자고싶다고 하면 충분한 수면을 취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부연.

한편 정총회장은 이날 당뇨 등 지병이 있는 관계로 특별히 집에서
의사처방에 맞춰 준비한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

<>.이기획관은 이번 수사에서 정보범죄대책기구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자랑.

특히 기업들이 회계장부를 컴퓨터나 디스켓에 저장하는데 정보범죄대책
기구가 이 자료들을 전부 출력, 분석한뒤 수사팀에 건네줘 큰 도움을
받았다고.

이기획관은 정총회장의 소환을 서두른 이유에 대해 "공격 (수사)이 꼭
정석대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며 "정총회장이 병원입원중에도 여러
관계자들을 불러 온갖 지시를 내리고 있는 마당에 증거가 없어질 것을
우려했다"고 해명.

또 이기획관은 정총회장의 신병처리여부에 대한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내일 오전이나 오후에 결정될 것"이라고 말해 정총회장의 영장은 빠르면
31일 오전중에 들어갈 것을 강력하게 시사.

<>.부도직후 잠적과 석연찮은 입원등 갖은 우여곡절끝에 정총회장이
이날 오후 2시47분께 서초동 대검청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편 지난 91년 2월 수서사건 당시 "내가 입을 열면 나라가 흔들린다"는
협박성 발언을 내뱉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검찰소환에 임했던
정총회장은 그때와는 달리 병색이 완연한듯 초췌한 모습으로 수사관의
부축을 받으며 묵묵히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정총회장은 "지금 심정이 어떤가" "소감 한마디 해달라" "건강은
어떤가" 등 보도진의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

검찰은 정총회장이 자진출두가 아니라 검찰소환에 응한 피내사자
자격이라고 밝혀 조사의 강도를 암시.

< 윤성민.한은구.이심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