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착수 4일째인 30일 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에 대한 전격 소환이
이뤄지면서 수사가 급진전을 보이고 있다.

대검 중수부 수사진은 이날 서울지방국세청소속직원과 은감원관계자들의
지원을 받아 한보그룹 등에서 압수한 회계장부의 정밀검토 및 분석작업을
벌였다.

검찰은 연일 방대한 분량의 회계자료와 씨름하고 한보그룹 자금담당자와
은행관계자 등을 불러 조사를 병행하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
정총회장을 상대로 밤샘조사를 벌이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부도직후 잠적과 석연찮은 입원 등 갖은 우여곡절끝에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이 이날 오후 2시47분께 서초동 대검청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총회장은 95년11월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 소환당시와 마찬가지로
검정코트에 흰색목도리를 두른채 굳은 표정으로 나타나 입을 굳게 다문채
10층 중수부조사실로 직행.

지난 91년 2월 수서사건 당시 "내가 입을 열면 나라가 흔들린다"는 협박성
발언을 내뱉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검찰소환에 임했던 정총회장은
그때와는 달리 병색이 완연한듯 초췌한 모습으로 수사관의 부축을 받으며
묵묵히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한보철강 등 계열사 부도사태로 그룹이 공중분해될 사면초가의 위기에
직면,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진 정총회장은 창업이후 가장 곤혹스런
순간을 앞두고 만감이 교차하는듯 가끔씩 고개를 떨구었다 다시 들곤하면서
사진촬영에 응하는 모습이었다.

<>.정총회장은 "지금 심정이 어떤가" "소감 한마디 해달라" "건강은
어떤가" 등 보도진의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

현관에서 청사내로 들어선 뒤에는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11층 조사실로 직행.

검찰은 정총회장이 자진출두가 아니라 검찰소환에 응한 피내사자 자격
이라고 밝혀 조사의 강도를 암시.

<>.최병국 대검중수부장은 이날 이례적으로 평소보다 20여분 이른 오전
8시35분께 청사에 출근한 뒤 검찰총장 보고에 앞서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정수 수사기획관과 박상길 중수2과장 등 수사실무자들과 20여분에 걸쳐
긴급수사회의를 진행해 이날중으로 거물급 소환이 있을 것임을 시사.

<>.한보그룹부도 사태이후 서울 동대문구 경희의료원에 입원중이던 정태수
씨가 입원 나흘째인 30일 검찰의 소환에 응하기 위해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그룹 홍보실 직원 2명과 함께 병실을 나섰다.

측근들의 부축을 받지 않고 혼자서 걸어나온 정씨는 기자들에게 큰
목소리로 "수고했습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이날 정총회장이 검찰에 소환돼자 한보그룹 직원들은 "회장님은 검찰에
의해 소환된 것이 아니라 자진출두한 것"임을 강조해 검찰 소환에 따른
모양새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

한보그룹 직원들은 또 "회장님이 오늘 당장 사법처리될지 어떨지 확신할
수 없어 아직 퇴원 수속을 밟지는 않았다"고 설명.

<>.한보철강에 대한 대출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산업은행의 손수일이사,
제일은행의 박석태상무가 29일에 이어 30일에도 재차 검찰에 소환되자
은행권은 아연 긴장하는 분위기.

검찰은 산업은행에 대해 지난 94년11월 제일 조흥 외환은행 등과 총
11억2천9백만달러의 2차 외화대출을 실시하게된 배경을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은행은 이에대해 "철강산업이 국가기간산업인데다 당시 사업성을
검토한 결과 지원해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일은행도 박상무의 2차 소환소식이 알려지자 예상된 수순이라면서도
내심 긴장하는 표정.

은행관계자들은 "모든 일이 순리대로 해결되지 않겠느냐"고 짧게 논평.

제일은행 박상무도 조사과정에서 한보철강에 대한 제일은행의 여신이 최근
2년간 9천억원 늘어난 점과 부도처리경위 등에 대해 집중적인 질문을
받았다고 관계자는 전언.

< 조일훈.윤성민.이성태.이심기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