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천자칼럼] 특별검사제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특별검사제 (Independent Counsel)란 고위 공직자의 비리나 위법 혐의가
    들어났을 때 수사와 기소를 행정부에서 독립된 변호사로 하여금 수행케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검사가 기소해야 할 사람을 기소하지 않을 경우 이를 통제하는
    우리의 재정신청제나 일본의 검찰심사회와 성격이 다른 것이다.

    특별검사제의 기원은 미국 18대 대통령 J 그랜트가 대통령 개인비서의
    탈세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특별검사를 임명한데서 비롯된다.

    그후 1920년엔 W 하딩대통령이 내무부 관리들의 스캔들을 슈사하기
    위해 특별검사를 임명했었다.

    미국에선 우리와 달리 검사를 행정부가 고용한 변호사라는 관념이
    강했으므로 특별검사제가 법적 뒷받침없이 자연스레 운용될 수 있었다.

    이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닉슨대통령의 워터게이트사건때였다.

    닉슨은 성역없는 수사를 약속하면서 하버드대학의 A 콕스를 특별검사로
    임명했었다.

    그러나 콕스가 사건 해결의 열쇠인 "백악관회의 녹음 테이프" 제출을
    집요하게 요구하자 닉슨은 콕스를 해임해버리고 만다.

    이를 계기로 78년 미국의회는 특별검사제 운영 규정을 포함한 정부
    윤리법을 통과시켜 특별검사는 법원이 지명토록 했다.

    일단 특별검사에 임명되면 건강상의 이유나 중대한 과실을 범하지
    않는한 해임할 수 없고 사무실을 포함안 모든 경비는 법무부가 지원한다.

    또 특별검사에게는 문서제출 명령이나 소환 및 출석요구권이 있고 이에
    불응하면 처벌을 받으며 필요한 경우엔 연방수사국 (FBI)도 지휘할 수
    있다.

    그러다 이 제도가 한때나마 후퇴하게 된 것은 레이건 대통령의 이란-
    콘트라사건 수사때였다.

    특별검사 윌시의 무차별 수사에 불만을 품은 공화당 의원들은 법개정을
    요구했고 92년12월 특별검사관련법이 폐지되면서 법무장관이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관행이 되살아났다.

    그후 94년7월 클린턴대통령이 화이트워터 사건을 공정하게 수사해야
    된다는 여론의 압력에 못이겨 특별검사제 관련법을 부활시켰다.

    우리나라에선 야당이 광주민주화운동과 12.12사태를 수사하기 위해
    특별검사 임명을 요구했고 한보사태에서도 특별검사 임명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30일자).

    ADVERTISEMENT

    1. 1

      [한경에세이] 재미로 시작한 골프

      나는 골프를 9살에 시작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방과 후 활동으로 처음 마주한 골프의 매력은 아주 단순했다. 미션을 수행하면 햄버거를 한 개 더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대학교 골프 연습장으로 향했다. 제일 친한 친구랑 대학생 언니 오빠들을 구경하며 캠퍼스를 가로질러 걸어갔다.노란색 체육복을 입고 캐비닛에서 마음에 드는 골프채를 고르면 연습이 시작되었다. 학교 골프부의 조수현 선생님은 기술보다 예의를 강조하셨다. 무엇보다 골프에 재미를 느끼게 해 주셨다. 연습장에서는 공을 담는 박스로 골대를 만들어놓고 축구를 하기도 했다. 나는 골프장으로 가는 길이 늘 즐거웠다.어릴 때부터 엄마는 나에게 많은 걸 경험할 기회를 주셨다. 4살 때는 미술 유치원을 다녔고, 5살 때는 피아노를 시작했다. 구연동화, 바둑, 발레, 바이올린 등 아마도 문화센터에 있던 모든 프로그램을 해보지 않았나 싶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첫 방과 후 활동은 플루트였다. 이렇게 많은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골프가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내 집중력의 원천은 어릴 때 받은 바둑 수업에 있다고 믿는다.골프를 시작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내 인생 첫 골프대회에 나갔다. 131타,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타수로 3위를 했던 기억이 난다. 6학년 때에는 주니어 골프 상비군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상상을 했다. 골프 선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돌아봐도,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는 아이가 왜 그렇게 골프에 매달렸는지 모르겠다.중학생이 되자 엄마가 바이올리니스트가 될지 골프 선수가 될지 선택하라

    2. 2

      [이응준의 시선] 복잡한 진실과 단순한 거짓

      2025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 방위 목적 등을 내세워 덴마크의 준자치령 그린란드를 매입하겠다고 공언했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이를 ‘21세기판 제국주의’라며 비난했다. 언론들, 특히 ‘한국’ 언론 대부분은 유럽연합(덴마크) 편을 들었다. 그러나 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국인들의 세계 인식 습성부터 자성(自省)해야 한다.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자 덴마크는 ‘중립’ 선언을 했지만 여지없이 침공당해 전투 6시간 만에 점령됐다. 망명 처지가 된 덴마크 정부는 미국에 ‘그린란드 방위 협정’을 요청, 1941년 4월 9일 체결한다. 그린란드에 군사기지를 설치해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은 덴마크를 해방시킨 뒤 그린란드도 반환해주었다.그린란드 국민의 약 90%는 예나 지금이나 원주민 이누이트들이다. 1950년대 덴마크는 그들에게 언어, 종교, 교육 등 총체적 ‘덴마크화 정책(Danization)’을 실시해 정체성 상실과 사회적 갈등을 양산했다. 심지어 이누이트 어린이 22명을 제대로 된 부모 동의도 없이 덴마크로 데려가 강제 문화동화 프로그램 속에 집어넣어 버렸고, 그 아이들이 그린란드로 되돌아왔을 때는 이누이트 말을 잊어버려 부모와도 대화가 불가능했다. 이 ‘실험된 아이들’은 알코올 중독, 우울증,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게 됐다. 또한 1960, 70년대 덴마크 정부는 이누이트 가임기 여성 약 4500명(당시 그린란드 가임기 여성의 50% 수준)에게 본인 동의도 없이 자궁 내 피임 기구(IUD)를 몰래(건강검진 위장 등) 삽입했다. 그녀들은 자신이 왜 불임인지도 모른 채 살아야 했고, 불임 장치가 몸 안에서 염증을 일으켜 자궁

    3. 3

      [차장 칼럼] 마포 소각장 무산의 교훈

      서울시는 지난 3일 마포구 상암동 광역자원회수시설(소각장) 입지 선정을 취소하라는 2심 판결에 대해 상고를 포기했다. 이로써 마포 신규 소각장 건립 계획은 최종 무산됐다. 올해부터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가 시행된 상황에서 서울시 쓰레기 처리 행정의 최후 보루가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1000만 시민의 삶과 직결된 중대 시책이 법원 문턱에서 좌초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이번 패소의 결정적 원인은 5년여 전 입지선정위원회 구성에서 비롯됐다. 오세훈 시장 재임 전인 2020년 12월 10일 위원회를 11명 이상으로 구성하도록 한 개정 폐기물시설촉진법 시행령이 시행됐지만 시는 닷새가 흐른 15일 옛 법령에 근거해 10명만 뽑았다. 정원 미달의 '나비 효과'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서울시의 항변은 궁색했다. 시는 위원을 내정한 12월 4일 위원회 설치가 완료됐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위원회 설치가 법적으로 유효하려면 위촉이 완료돼야 하는데, 실제 각 위원에게 위촉장이 전달된 15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단 한 명 차이인 ‘사소한 실수’는 위원회 구성 자체가 위법하므로 그간의 행위가 모두 무효라는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10인 위원회’가 지난 3년여간 6만여 곳의 후보지를 검토하고, 수십 차례 회의를 거쳐 상암동을 낙점하기까지 공들인 탑도 잘못된 첫 단추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주민 설득에 실패한 서울시가 법적 허점을 제공하면서 반대 세력에 강력한 반격의 빌미를 준 꼴이다.시는 이제 입지 선정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할 처지다. 3년간 쏟아부은 행정력과 수십억원의 용역비도 매몰 비용이 됐다. 시간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