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라는 이름은 지난 74년 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이 세무공무원을 그만
두고 몰리브덴을 수출하는 한보상사를 창업하면서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78년에 들어서면서 미국이 몰리브덴생산을 갑자기 중단해 몰리브덴 수출
가격이 10배 이상 뛰면서 큰 돈을 벌었으며 이때 함께 시작한 건설업도
아파트를 중심으로 성공을 거둬 70년대말부터 한보는 점점 재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79년 당시 동양최대의 아파트단지인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건설하면서 급속히 사세를 확장했다.

이후 84년 부산 사상구 구평동에 있는 10만평 규모의 금호철강을 인수해
한보철강으로 이름을 바꾸며 철강산업에 뛰어들었다.

한보철강은 아파트 건설붐을 타고 철근판매로 엄청난 이익을 챙기며 지난
86년 재계 30위권 대열로 진입했다.

이를 계기로 정총회장은 지난 87년부터는 당진제철소 건설을 추진하며
"철강그룹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드디어 89년에는 아산만에 1만평을 매립해 세계 5위권의 철강공장을
목표로 당진제철소를 건설하는 철강 2차사업에 착수하는 등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91년초 수서택지 특혜 분양사건에 연루돼 정총회장이 구속되기까지
하면서 한차례 좌초위기를 맞았다.

정총회장은 7월 집행유예로 석방된 후 경영권을 3남에게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듯 했다.

하지만 한보철강은 정회장이 93년 다시 경영일선에 복귀한후 특유의 사업
수단을 발휘한데 힘입어 초고속성장가도로 다시 들어왔다.

92년까지만 해도 4개계열사에 불과했던 한보는 노태우 전대통령이 퇴임한
이듬해에 한보정보통신 승보목재 한보관광 승보철강 한보엔지니어링
상아제약 등 무려 6개 회사를 설립 또는 인수했다.

이후 해마다 1~3개 회사를 추가해 계열사 숫자가 지난 95년엔 26개로
불어났다.

문민정부들어서는 제일은행과 모그룹 사이에 진행되던 유원건설인수협상의
중간에 끼여 유원건설을 낚아채는 능력을 과시했다.

현재 한보그룹은 (주)한보 한보철강 등 22개 계열사를 갖고 있으며 작년
총 매출액은 4조3천29억원이었다.

재계 순위는 매출기준 14위 여신규모로는 9위를 마크했다.

(주)한보와 한보철강이 전체 매출의 7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 손상우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