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 저는 구제 불능입니까? 아까 병원에 들어가야 된다고 하셨지요?
진단 결과가 그렇습니까?"

그는 애원이 섞인 슬픈 얼굴로 묻는다.

정직하고 착한 아이에게 어른들은 한없는 애정을 베푸는 것이다.

"무슨 병균이 있어서만 병인 것은 아닙니다.

지영웅씨는 지금 약의 힘보다는 정신적 치료가 필요해요.

월요일에 만나는 마담께서 카드를 얼마나 쓰라고 내주었습니까?"

공박사는 그가 처음에 와서 고백할때 내뱉듯이 월요일에 만나는 여자와
수요일 금요일, 그렇게 날짜를 정해놓고 밀회를 해준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의 고객들은 일주일에 한번만 밀회를 하고 그렇게 거금을
뿌리는 것이다.

"그 사모님은 오래 되었는데, 월요사모님으로 밖에는 전화번호도 직업도
몰라요.

그냥 어느 형님이 얌전한 사모님이라고 소개해줬는데 세번째 만났을 적에
<><>은행 카드를 주었어요.

별로 애인을 두어보지 못했던 순진한 부인인것 같았어요.

한달에 2백만원을 초과하지 말라고만 했어요.

저는 잘 지켜줬어요.

아니면 곧 그 카드가 취소되니깐요.

무슨 과자공장 같은 것을 하는 여자인데, 전화번호도 모르지만
만날 때마다 케이크를 갖다 주는 것을 보면 그런것 같아요.

그리고 아주 수수한 싱글인걸요"

"독신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죠?"

"저는 냄새 맡는데는 천재니깐요. 허허허허"

기가 막히는 녀석이다.

아니 기가 막히는 세상이다.

아니 남자들은 옛날 옛적에 누려온 쾌락인데, 이제서야 한국 여성들은
겨우 획득하고 있는 특전이다.

아무튼 지영웅이 오면 공박사는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너무나 중년 여성들의 성적 개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였다.

엄청나게 한심한 세상인것 같다.

"지영웅씨 말이 나는 처음에 거짓말처럼 느껴졌어요"

"아닙니다. 저는 거짓말을 안 해요.

왜냐하면 여자도 인생을 즐길 권리는 있는 것이고, 나야 좀 치사하게
살았지만 이제부터 마음먹고 내 인생의 마스터 플랜을 다시 짜고 있는
중입니다.

공박사님의 지시대로 잘 따르기로 결심했어요"

이런 기특할 데가 있나.

공박사는 너무도 통쾌하다.

의사들은, 특히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분석을 통해 그 환자가 많이
정상적인 생활인으로 귀의할때 큰 보람을 느낀다.

사람하나 살려 놓은 것과 같은 쾌재를 올리는 것이다.

그녀는 귀여운 루비의 머리를 쓰다듬어줄 때의 흔쾌한 마음으로 따뜻한
시선을 지영웅에게 보낸다.

"병원에 입원을 해야 되는 케이스로서 겉으로는 아주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도 있어요.

그것은 마약중독 알콜중독 쇼핑중독 섹스중독 과식중독과 같은
정신치료로써 다스려야 할 환자들중에 스스로가 입원을 원할 때도 있죠"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