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는 2백억달러가 넘는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반도체 등 주력 수출품목의 국제가격이 폭락한데다 엔화약세로 대일가격
경쟁력도 떨어진게 주요인이었다.

올해도 이같은 요인들이 해소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연초부터 노동계의 파업사태까지 겹쳐 올해 수출은 첫 걸음부터
휘청거리고 있다.

이에 한국경제신문은 대내외적 경제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무역의
지속적 성장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14일 무역협회와 공동으로 "97년 대내외
무역환경과 우리무역의 과제"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했다.

유득환 무협부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서 박웅서 삼성경제연구소
대표이사사장, 유철웅 해태상사사장, 민상기 서울대경영학과 교수 등 각계
전문가들은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 기업 근로자
등 각 경제주체들이 제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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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득환 무협부회장 =올해는 그 어느해보다 대내외적인 경제환경이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우선 연초부터 노사문제가 불거지면서 사업장마다 파업이 잇따르고 있고
고비용 저효율구조로 말미암아 산업경쟁력이 한계에 부딪치지 않았냐는
지적이 많습니다.

또 올 연말로 예정된 대통령선거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급격한 시장개방으로 인한 수입급증으로 내수시장마저 외국제품들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작년 무역동향을 살펴보면 수입은 1천5백2억달러로 11.2% 증가한 반면
수출은 1천2백98억달러로 3.8% 늘어나는데 그쳐 무역수지적자는 2백4억달러
에 달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적자규모입니다.

<> 유철웅 해태상사사장 =지난해는 소비재 부문에서는 선진국 및 개도국에
밀리면서 기존 마켓셰어를 잠식당했고 중화학제품 시장에서는 엔화약세에
의한 상대적 가격 경쟁력의 약화로 고전을 면치 못한 한해였습니다.

상품의 가격 및 비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팔 물건이 여의치 않게 됐습니다.

하지만 기존 시장은 계속 지켜가야 하고 새로운 시장도 개척해야 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물건을 사다가 제3국에 되파는 삼각무역이 어느해 보다
많았습니다.

일본의 종합상사들도 삼각무역의 비중이 20~25%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한국도 해외소싱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 박웅서 삼성경제연구원 대표이사사장 =지난해 무역수지적자가 크게
늘어나고 경쟁력이 떨어진 것은 국내 기업들의 대내적인 경쟁력 하락보다는
대외적 상황변동이 더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은 40% 평가절상을, 반대로 일본은 40% 평가절하를 단행했습니다.

이것들이 복합적으로 한국 수출경쟁력 하락에 작용했습니다.

일본은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하던 가전제품을 본국에서 생산해도
경쟁력을 지닐 정도가 됐다고 합니다.

또 일본은 중앙은행 재할인율이 0.5% 밖에 안될 정도로 저이자율 정책을
고수하면서 환율의 평가절상을 막고 있습니다.

<> 민상기 서울대경영학과 교수 =환율의 고저만 가지고 수출경쟁력을
논하는 것은 일면적인 분석이라고 봅니다.

대만이나 인도네시아 등도 그동안 한국과 비슷하게 환율절하폭이 4~5%에
불과했는데도 유독 한국만 어려운 것은 환율보다는 산업자체의 경쟁력에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 유부회장 =불황극복을 통한 수출경쟁력의 회복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비 투자 등 대내외적인 무역환경을 점검해보는 것이 필요할 텐데요.

<> 박사장 =최근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소비억제를 역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과소비를 너무 확대해석한 단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과소비는 억제해야 겠지만 자칫 소비억제는 내수시장 불황으로 연결될
위험이 있습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는 인위적으로라도 재할인율을 2%정도 낮춰 투자를
촉진하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 민교수 =우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입에 발맞춰 제도나 관행들을
국제규범에 걸맞게 정합성을 높여야겠죠.

특히 수출에 기울이는 노력만큼 수입측면에서 제도개선과 인력전문화
조치가 수반돼야 합니다.

현재 8%로 돼 있는 기본관세율은 산업보호 측면에서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유사장 =개별기업들은 OECD가입에 따라 거기에 맞는 준비를 나름대로
하고 있다고 보이는데 정부는 정책일관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입니다.

단적인 예를 들면 정부는 개방화 세계화를 부르짖다가도 어느날 고가수입을
규제한다면서 국세청 관세청을 동원해 상품 수입이 많은 기업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기도 하거든요.

<> 박사장 =OECD가입으로 기대할 수 있는게 정부간섭의 최소화라고 생각
합니다.

경쟁력의 핵심은 금융시장의 합리화를 통한 실물경제의 활성화에 있다고
보이는데 이런 관점에서 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발표한 금융개혁의 성공
여부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 민교수 =이자율 하락,금융기관간의 합병 및 업무조정 등 금융개혁은
비단 금융산업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계 기업 등 복합적인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성공여부는 아직 미지수라 할 수 있습니다.

OECD가입은 거래의 자유화를 가져오는 효과가 있을 뿐이지 금융개혁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 유부회장 =현재 행해지고 있는 해외설비투자의 대부분은 마케팅이나
기술습득을 위한 측면보다는 싼임금을 찾아나서는 현실도피성 투자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내 산업공동화 등 여러가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
입니다.

국내 투자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보는데 올 설비투자 전망은
어떻습니까.

<> 유사장 =작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설비투자는 올 상반기까지도 감소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들이 경기하락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해 설비투자를 계속 미루고 있는
추세입니다.

<> 박사장 =작년 설비투자 동향을 살펴보면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 모두
불황의 저점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점에서만 회복되면 경제의 저력과 탄력성이 되살아나 투자가
증가하는데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유부회장 =한국을 둘러싼 대외무역환경은 어떻게 전개되리라고 보십니까.

<> 박사장 =지난해 연말 WTO(세계무역기구)각료회의에서는 오는 2000년까지
정보분야에서 28개국이 모든 관세를 철폐한다는 내용의 "정보기술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런 성격의 협정들은 앞으로 정보기술 뿐만 아니라 전 산업분야로 확산될
것입니다.

거스를 수 없는 개방화추세를 이용해 수출회복의 기회로 만드는 것은 전적
으로 우리의 책임에 달린거죠.

<> 민교수 =우선 대외환경을 우리나름대로 이용할 마스터플랜의 작성과
이에 따른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미국의 경우 충분한 준비기간을 갖고 일관된 전략하에서 통상정책을
추진하는 반면 한국은 현상에 급급해 장기적인 정책 수행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 유사장 =최근 무역동향을 살펴보면 중국이 세계시장의 물량조절자 역할
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중국이 재정상태가 좋아져 물량을 수입하기 시작하면 세계시장에서 전체적
으로 물건이 달리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중국이 올해는 인플레이션을 어느정도 진정시키고 긴축정책을 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수출에 다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봅니다.

<> 박사장 =올 세계경제전망은 그다지 어둡지 않습니다.

개도국은 6%, 아시아국가들은 7%정도의 경제성장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이 APEC나 ASEAN 등 다자간 지역경제협력기구를 잘 활용하면
세계적인 경제회복조류를 이용해 수출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유부회장 =APEC나 ASEAN 등 기존 지역경제협력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
해야겠지만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을 아우르는 한국주도의 지역경제협력체제도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동북아 국가들은 산업구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산업구조를 보완
한다는 차원에서 "동북아 경제협력체"등을 구상해볼 수 있겠지요.

끝으로 좌담회를 정리한다는 차원에서 정부에 대한 건의나 기업차원에서
각오 등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 유사장 =정부와 기업이 서로 역할을 분담해 경쟁력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정부는 규제철폐 인프라구축 등 경쟁력확보를 위한 기반구축에 나서고
기업은 기업대로 R&D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해외마케팅강화 등을 끊임없이
펼쳐 나가야 하겠습니다.

<> 민교수 =저는 교육에 대해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우수한 인력들이 종합상사에 취업해 수출의 첨병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경쟁력확보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오면서 소위 최고 엘리트들이 힘든 종합상사를 마다하고
고시나 서비스업종에 몰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수출과 해외관계를 맡을 인력이 부족해지지 않나 하는 우려가
앞섭니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수출국이나 투자국의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까지 섭렵할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이 시급합니다.

<> 박사장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눈앞에 닥친
불황을 타개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으로는 단기적인 부양책과 장기적인 구조조정책
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단기적인 부양책으로는 이자율 하락을 통한 투자촉진을 들 수 있겠죠.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상실한 대기업제품을 신속히 중소기업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및 지원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해외투자에 있어서도 단기에 투자비를 회수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현지화방안을 마련,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유부회장 =무역은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가
조화를 이루어 빚어내는 종합예술품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려운 대내외 환경속에서도 무역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 정부
가계 등 개별 경제주체가 제자리에서 제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할까 합니다.

< 정리=손상우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1일자).